[문화] 신예은 “정년이보다 영서가 맘에 쏙…여성국극 알리게 돼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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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올 하반기 최고 화제를 모은 드라마 ‘정년이’(tvN)가 막을 내렸다. 1950년대 천재 소리꾼 윤정년(김태리)이 여성국극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은 17일 최종회 시청률이 16.5%(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12부작의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정년이'의 노력형 엘리트 영서로 호평 #1년간 소리 연습, 하루 8시간 매달리기도 #"난 지금 왕자·도령이다 주입하며 연기"
정작 종영 이후엔 “진짜 성장서사의 주인공은 정년이가 아닌 허영서(신예은)”란 평이 나온다. 천방지축 돌출행각으로 ‘민폐’ 오명까지 불렀던 정년이와 달리 영서는 ‘타이거 맘’(엄격하게 훈육하는 엄마) 아래서 콤플렉스를 노력으로 극복하며 자신의 라이벌까지 자극한 이채로운 캐릭터다.
배우 신예은 역시 영서 역에 애착을 드러냈다. 2018년 웹드라마 ‘에이틴’으로 데뷔한 그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2022)에서 문동은(송혜교)에게 학교폭력을 가하는 박연진(임지연)의 아역으로 시청자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 20일 서울 역삼동에서 만났을 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주인공) 정년이 역과 바꾸고 싶지 않고 영서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처음 대본 볼 때부터 영서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노력하는 엘리트니까. 영서는요, 매번 비교 당하는 사람일 수도, 자존감이 낮아서 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아니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목표치가 안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누구나 공감하는 면이 있기에 영서가 사랑받은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드라마 주인공의 라이벌은 ‘빌런’(악당)이기 쉬운데 매란국극단 연구생 영서는 정년이가 극단 생활에서 그르치는 지점을 짚어주고 때로 독한 말로 자극하고 독려한다. 신예은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관계를 생각했다. 살리에르 역시 재능이 엄청났지만 딱 하나 부족한 게 자기 재능을 몰랐다. 영서도 정년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데, 단지 라이벌이 아니라 그걸 넘어선 관계라서 멋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극중 마지막 무대인 ‘쌍탑전설’에서 달비와 아사달은 영서와 정년이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극중에서 이몽룡과 방자(‘춘향전’)·고미걸(‘자명고’)·온달(‘바보와 공주’)·달비(‘쌍탑전설’) 등 다채로운 남역(男役)을 소화한 신예은이 자신의 극중극 연기 가운데 가장 흡족해한 대목이기도 하다. “정년이가 부처님 찾으며 흥분해서 날뛸 때 영서가 ‘미안하네, 잘못했어’ 비는 장면인데, 연습할 때도 소름 끼쳤는데 방송으로도 잘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노래·춤·소리 3박자를 구현해야 하는 여성국극은 준비단계부터 배우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신예은도 약 1년간 춤사위와 굴신(한국무용에서 천천히 하체를 펴는 동작)을 연습했고, 소리는 하루 1~2시간 레슨 받았다. 혼자 8시간씩 연습한 적도 있단다. 원래 목이 약한 편이라 연습 중에 목이 가는, ‘정년이’ 식으로 말하면 ‘떡목’이 되는 경험도 했다. 병원 신세까지 졌지만 그 덕분에 극중극을 “멋지게 해냈다”고 돌아본다.
실은 신예은도 ‘정년이’에 캐스팅되면서 여성국극을 처음 접했다. 웹툰 원작 바탕으로 지난해 공연된 창극 ‘정년이’도 관람했고, 비교체험 차원에서 일본에 건너가 여성극단 다카라즈카의 공연도 봤다고 한다.
“사실 (다카라즈카의)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하면 얼마나 할까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진짜 여자 맞아? 싶게 완벽하고 문옥경(정은채)이 따로 없구나 할 정도. 제가 한 남자 역할요? 자신은 없었지만, 내가 남자 연기를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청자들도 믿어주실 거라서 ‘난 지금 도령이다’ ‘난 지금 왕자다’ 이렇게 계속 주입했죠.”
그가 생각하는 여성국극의 매력은 “악보가 확실히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 표현을 각자 스타일로 할 수 있다”는 점.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정년이가 부르는 ‘방자 분부 듣고’와 영서가 부르는 게 살짝 음이 다른데 표현의 차이가 이런 식으로 드러난단다. “소리를 통해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했다.
글로벌 OTT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정년이’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미국 매체 포브스는 “K-드라마 '정년이'의 진짜 스타는 바로 판소리(In The K-Drama 'Jeongnyeon: The Star Is Born' The Real Star Is Pansori)”라는 기사로 한국의 여성국극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국가유산진흥원은 내달 3일과 7일 총 3회에 걸쳐 원로·신진이 함께 하는 여성국극 ‘선화공주’를 무대에 올린다. “여성국극 재조명에 ‘정년이’가 큰 힘이 됐다”고 하자 신예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드라마 덕에 그렇다고 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실은 사람들이 몰랐을 뿐 그동안 그분들은 꾸준히 뜨겁게 활동해왔더라고요. 저도 공연 보면서 알게 됐으니까요. 훌륭한 분들이시고, 이번 기회로 계속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극중 ‘쌍탑전설’의 마지막 장면과 ‘바보와 공주’ 오디션 때 김태리 연기를 보면서 “저게 배우의 매력이다, 내가 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울림이 왔고 “이런 감정이 계속 연기를 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했다. 차기작은 JTBC ‘백번의 추억’과 디즈니플러스의 ‘탁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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