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비선' 트럼프 장남 인사∙정책 개입…韓과 달리 美선 관대한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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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헌터 바이든보다는 나은 인간(better human)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뉴햄프셔 홀리스에서 열린 당내 경선 유세를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대신해 이끌었던 트럼프 주니어는 중앙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당신이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 특혜를 누리다가 탈세, 불법 총기 소지 혐의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보다는 자신이 낫다는 말이다. 당시 트럼프 주니어 역시 재무제표를 부풀려 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였다.
트럼프 주니어는 현재 정권 인수팀의 상임고문을 맡아 트럼프 2기의 최고 실세가 됐다. 그의 말엔 당선인에 버금가는 무게가 실린다. 고문 직함이 없던 7월 전당대회 때 이미 “트럼프 행정부에 재앙이 될 사람에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인사에 개입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당선인의 아들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비선 개입'이란 비판이 나올만 하다. 그러나 미국에선 트럼프 주니어가 인사를 비롯해 외교정책에까지 관여하고 있음에도 우려나 비판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
이에 대해 아이오와 주립대의 맥 셸리 교수는 20일 중앙일보에 “미국엔 가족이 대통령에게 공직 임명이 아닌 비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장벽이 없다”며 “문화적으로도 가족을 대통령의 ‘키친 캐비닛’으로 지칭하며 대통령에게 자연스럽게 자문하거나 인사에 관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1913~1921)이 뇌졸중으로 국정을 돌볼 수 없었을 때 영부인 이디스 여사가 2년간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했다. 당시 부통령이 권력을 이양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이디스 여사는 ‘비밀 대통령’으로 불렸고 미국인들도 영부인의 ‘침대가 정치(bedside government)’를 용인했다.
미국에서도 가족의 정치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뒤 하원에선 대통령 등 고위공무원의 친족을 정부기관에 채용하지 못하게 한 ‘친족채용금지법’이 통과됐다.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영부인 힐러리에게 백악관의 보건의료정책 개혁 태스크포스를 맡겼을 때도 논란이 됐지만, 당시 연방항소법원은 “영부인은 사실상의 공직자”라며 위원장직 임명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인 2017년 딸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고문직을 신설해 임명했다. 이때도 친족채용 논란이 일었지만, 법무부는 친족채용이 금지된 행정부와 달리 백악관 참모에 대해선 대통령의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했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 주립대 명예교수는 “관련법이 모호한 점도 있지만, 미국 유권자가 대통령 가족의 국정 관여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기본적으로 미국인도 가족들의 정치 개입이 허용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 관용은 여론이 수용할 수 있는 ‘선’까지만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들이 윤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족의 정치개입과 관련한 마지노선은 “명확한 이해충돌”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금전적·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목적으로 친족을 채용하거나 권한을 부여할 경우 미국의 유권자도 크게 반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1기 때 실세였던 이방카와 쿠슈너는 이해충돌 논란이 일자 재임 기간 정부 급여를 받지 않았지만, 부동산 회사를 계속 보유하며 6억 4000만 달러의 외부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 더 큰 논란을 빚었다. 이들은 2기 행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대신한 이가 트럼프 그룹의 수석부회장인 기업인 트럼프 주니어와 부사장 에릭이다. 이들이 공직을 맡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에릭의 배우자이자 트럼프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의 위상도 두드러진다. 그는 이번 대선의 선거자금을 총괄한 전국위원회(RNC) 공동의장을 맡았고, 플로리다에 지역구를 둔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그의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속전속결 인선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는 이날 매슈 휘태커 전 법무장관 대행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대사로, 피트 훅스트라 전 네덜란드 대사를 캐나다주재 대사로 각각 지명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수장’으로 불리며 가장 큰 이권과 관련한 정책적 결정을 할 재무장관 인선은 이날도 이뤄지지 않았다. 인수팀 내에서는 재무장관을 놓고 알력 싸움까지 노출된 상태다.
셸리 교수는 “행정·입법·사법을 사실상 장악하며 견제 장치가 없는 트럼프 2기에서 가족들에게 실권이 집중될 경우 극단적 이해 충돌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권력을 악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겼던 과거 ‘전리품 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슈미트 명예교수도 “선출되지 않은 가족의 권력까지 지나치게 용인한다는 면에서 미국 정치는 불행히도 아직 ‘서부 시대(wild west)’의 윤리 기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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