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파란옷 자제령, 마이크 안 잡는 이재명…달라진 野 장외집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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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3일 반(反)정부 장외집회부터 주도권을 친야 단체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당원 아닌 일반 시민 참여를 보다 독려하는 동시에 “이재명 대표 방탄용 집회”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은 22일 확대간부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23일 집회는 당 주관으로는 15분 동안만 짧게 진행한다”며 “오후 6시부터 시민사회 주관으로 김건희·채상병 특검 추진 등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주 집회에서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걸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자”고 소리쳤던 이 대표가 이번집회엔 마이크를 잡지 않는다. 김 대변인은 “박찬대 원내대표 발언 정도 외에는 크게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집회 현장에서 당색(黨色)인 파란색도 가급적 배제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전날까지 각급 시·도당을 통해 ‘이번 집회는 지역위 깃발과 파란색 계열 의상 착용 없이 진행할 예정. 깃발X, 파랑 의상X’라고 공지했다.
작전상 일보 후퇴지만 세 불리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이 대표는 전날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만들어낸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희망의 내일을 만드는 길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 당원에 보냈다. 지도부 소속 의원은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지난 13일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연대(탄핵연대)’를 발족한 야5당(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명의로 투쟁을 이어가는 방안도 거론된다.
민주당의 이같은 결정은 “시민 참여와 호응이 생각만큼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강성 지지층의 요구가 커 집회를 이어가긴 해야겠는데, 방탄용 집회라는 여론의 뭇매가 따갑다’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달 2일부터 16일까지 세 차례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진을 치고 농성했다. 그런데도 당 안팎에서 ‘지지층 내부 결집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회 경력 7년의 민주당 보좌진은 통화에서 “인원이 부족해 의원실 보좌진을 총동원하고, 지역에서도 당원을 서울로 수송한다”며 “당에서 20만, 30만 명이 모였다고 발표하지만 현장 느낌으로는 솔직히 경찰 추산(1만5000~2만 명)이 더 비슷하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불만도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충청 지역의 지역위원장은 “벌써 4주째 주말마다 집회 참석차 서울에 올라가는데 이게 얼마나 실효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도부 눈치는 눈치대로 봐야 하는데, 지역구 행사를 계속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곤혹스럽다”고 했다. 일부 의원실의 경우 집회 참석조를 편성해 역할을 분담하기도 한다. 보좌진들 사이에서 “매주 나가는 방은 진짜 죽어난다”, “초선들 비 맞는 사진을 서로 찍으려다 당직자와 보좌진이 실랑이를 벌였다” 등의 푸념이 적잖다.
민주당이 ‘탄핵’ 표현을 극도로 자제 중인 것 역시 집회가 충분히 힘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직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진보 진영만 거리에 나와서는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없다”며 “중도-진보 성향 국민까지 거리에 나와야 탄핵이 되는데, 여론이 무르익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원래 장외집회는 진보진영의 전통적 투쟁 수단이었다. 일례로 1987년 11월 30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김대중(DJ) 평민당 후보의 유세에는 130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386 운동권 그룹이 민주당에 수혈된 뒤 2002년 효순·미선 사건, 2008년 광우병 집회 등 제도권과 재야세력이 결합된 광장 정치는 과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80년대 학생 운동의 과격성을 순화시키면서 대중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는 데 주력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에는 “10년간 이어진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가 야권에 우호적인 집회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마침내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낸 2016년 촛불시위가 절정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진보진영의 투쟁력이 약화됐다. 일단 민주당이 집권세력이 된 것 자체가 장외집회의 명분을 떨어뜨렸다. 집회의 실질적 세력인 시민단체가 제도권으로 편입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윤태곤 더모아정치분석실장은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을 거치며 시민사회·지식인그룹의 진영화가 본격화됐다”며 “이제 대중이 더는 시민단체의 중립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집회 참여가 주는 의미도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는 이재명 대표 체제 야당에서도 비슷하다. 집권당은 아니지만, 압도적 다수석(170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거대 의석을 가졌으면 국회 안에서 승부를 봐야지, 소수당이 나가서 하는 짓을 하고 있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4·10 총선의 ‘친명 공천’ 결과 86 운동권 그룹이 당 주류에서 배제된 것도 장외 투쟁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집회 흥행의 최대 장애물이다. 아무리 정권의 치부를 지목해도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시선에 갇힐 수밖에 없어서다. 윤 실장은 “먹거리 문제였던 광우병 사태처럼 거리투쟁이 폭발력을 띄려면 정파성을 벗어나는 게 관건”이라며 “지금도 만약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면 집회가 되레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12월 6일까지는 광화문 집회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당 관계자는 “한파 등을 고려해 그 이후에는 권역별 분산 집회 형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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