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한 건물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부의 아파트 건물이 무너지면서 최소 20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측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최고위급 인사를 살해하기 위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동부 등 다른 지역에서도 맹공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BBC·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3일(현지시간) 오전 4시쯤 베이루트 중심부 바스타 지역의 8층 아파트 건물에 최소 4개의 폭탄을 투하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번 공습으로 최소 20명의 사망자와 66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깜깜한 새벽에 대피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공습이 이뤄지면서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의 최고위급 인사를 살해하기 위해 이번 공습을 단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지난 9월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할 때 사용한 ‘벙커버스터(BLU-109)’를 사용했다고 레바논 국영 NNA통신은 전했다. BLU-109는 약 2m 두께의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초대형 폭탄으로 지하에 있는 목표물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실제 해당 공습이 이뤄진 자리에 수 미터 깊이의 잔해 구덩이가 생겼다.

하지만 헤즈볼라 소속 레바논 하원의원 아민 셰리는 공습을 받은 건물에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공습 현장 인근 주민인 알리 아사르(55)는 BBC에 “여기에 (헤즈볼라) 1명이 숨어있다고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건물을 부숴야 하는가. 우리는 인간도 아닌가”라며 이번 공습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은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베이루트 중심부를 4번 공습했다”고 전했다.

23일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소방관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인 건물의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이날 헤즈볼라의 본거지로 알려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도 공습했다. 전날인 22일에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11층 건물이 붕괴했고, 구급대원 5명이 숨졌다. 23일 레바논 북동부 도시 발벡에서도 공습으로 어린이 4명을 포함해 최소 15명이 숨졌다고 레바논 보건부는 전했다. 레바논 남부의 루움 마을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최소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 키암 등에서 이스라엘군을 포격했다고 레바논 국영통신은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는 22일 현재 가자지구 전쟁 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로 최소 3670명이 숨지고 최소 1만5413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지난 9월 이스라엘이 무선호출기 동시 폭발 작전으로 헤즈볼라 대원을 공격하며 양측 간 전쟁이 격화한 후 발생했다.

미국 주도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60일간 잠정 휴전하는 합의안을 미국이 양측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 기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대원은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을 따라 흐르는 리타니 강 북쪽으로 철수해야 한다. 양측이 철수한 지역은 레바논군과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 배치돼 안전지대를 형성한다. 지난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쟁을 벌인 후 통과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01호에 근거한 휴전안이다.

그러나 해당 결의안은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를 거점삼아 활동하면서 사실상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이스라엘도 레바논에 수시로 군사 작전을 펼치며 양측 갈등이 커졌다. NYT는 “미국 정부 관계자는 휴전안의 현실적 한계를 알고 있지만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