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코리아 알린 ‘청자의 전성시대’…천년의 푸른 빛, 원앙이 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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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활짝 펼친 채 고개를 치켜들고 부리를 살짝 벌린 수컷 원앙. 까만 눈동자는 또렷하게 불거져 있고, 목털은 쓰다듬고 싶을만큼 섬세하게 음각(陰刻)돼 있다. 높이 12㎝에 불과한 이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이 날아갈 듯 생생한 건, 무엇보다 오묘한 비색(翡色) 덕이다.
고려인들은 상형(像型)청자에 유약을 두텁게 바르지 않았다. 맑은 푸른빛을 통해 애초 조각한 형상이 두드러지는 걸 선호했다. 그만큼 상형 솜씨가 뛰어났다. 향로·연적 같은 일상용품을 이런 동식물 및 인물 형태로 만들고 감상하는 걸 즐겼다. 1123년 고려를 찾은 북송 사신 서긍(1091~1153)이 ‘산예출향(狻猊出香)’ 즉 ‘사자모양 청자 향로’가 뛰어나다는 상찬을 남겼을 정도다. 이 같은 상형 기법이 완숙해질 무렵 회화적인 장식성이 더해지면서 훗날 상감(象嵌)청자가 발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이 처음으로 고려 상형청자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특별전을 연다. 26일 개막해 내년 3월3일까지 이어지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이다. 국내외 25개 기관·개인과 중국·미국·일본 3개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11건에 보물 9건, 등록문화유산 1건이 포함됐다. 특히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12~13세기)는 미국 시카고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번이 첫 국내 나들이다.
25일 둘러본 전시실에는 용·사자·연꽃 등을 형상화한 명품 청자들 외에 오리나 연꽃 모양의 파편들도 눈에 띄었다. 전남 강진 사당리와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 발굴품들이다. 유약을 바르기 전 초벌 단계의 파편에서 이미 생생한 원앙의 부리와 깃털을 확인할 수 있다. 김혜원 미술부장은 “고려인들은 자연의 푸른빛 속에 애초의 동식물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선호했다. 이 때문에 같은 시기 북송 혹은 남송의 청자보다 한층 투명한 유약을 개발해 썼다”고 설명했다.
이를 비교하기 위해 동시기 북송대(960~1127)의 중국 자기들을 함께 전시해놨다. 같은 원앙 모양 청자라도 중국 허난성 청량사의 여요(汝窯) 출토품에 비해 고려 쪽의 깃털 음영(陰影)이 훨씬 두드러진다. 유약이 칠해질 때 농담(農談)까지 감안해 형체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애령 학예연구실장은 “화장을 두텁게 하는 게 아니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로 바탕을 드러내는 식”이라며 “그만큼 ‘맨얼굴’에 자신 있었단 얘기”라고 비유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상형청자 185건(211점)을 구석구석 조사했다. 이 가운데 83건은 컴퓨터 단층촬영(CT)까지 했다. 겉으로 봐선 알 수 없는 내부구조와 제작기법을 해부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청자 사람모양 주자’(국보)를 보자. 복숭아 일곱 개가 담긴 그릇을 조심스레 받쳐 든 사람 형상(높이 28㎝)의 이 13세기 청자는 원래 술을 담아 잔에 따르는 용도의 주자(注子)였다. 머리에 쓴 보관(寶冠) 가운데로 술을 부어 담았다가 복숭아 모양 주구(注口)로 따르는 형태다.
그간 복숭아 그릇을 받쳐 든 양팔은 몸체 표현을 위한 것으로만 여겨졌다. 이번에 CT 단면을 분석한 결과 양팔이 각각 대롱처럼 비어 있어 술을 따를 때 중간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게 밝혀졌다. 보존과학부의 양석진 학예연구사는 “몸통의 술을 바로 따르는 게 아니라 양팔을 관(管)처럼 활용해, 술을 확 쏟지 않고 졸졸 따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심미적일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 잘 설계된 놀라운 경지”라고 말했다.
당대의 생산과 유통 경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발굴품들도 곁들였다. 태안 대섬, 마도 1호선, 보령 원산도, 진도 명량해협에서 건져 올린 출수품을 통해 바닷길을 따라 왕성하게 거래됐던 고려청자의 황금기를 엿볼 수 있다. 김재홍 박물관장은 “중국에서 청자 기법을 받아들인 고려가 특유의 심미안과 독창적 기술로 이를 업그레이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문화에서 국제교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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