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9연승, 좋은 시작 아직 아니다”…아본단자 감독 ‘흥’ 나는 채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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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을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경기 도중 코치가 뜯어 말려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두 시즌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김연경과 함께 올 시즌엔 꼭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전민규 기자

“좋은 시작이요? 아닙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마르첼로 아본단자(54·이탈리아) 감독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팀이 개막 9연승을 질주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는 데도 베테랑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최근 경기도 용인 흥국생명 연습체육관에서 아본단자 감독을 만나 올 시즌 각오를 들어봤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무패 행진을 하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현대건설을 상대로 두 차례 모두 승리를 거두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그런데도 아본단자 감독은 “전술적·기술적으로 잘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끝까지 좋은 결과를 내려면 더 성장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란 특급 선수를 보유하고도 최근 두 시즌 연속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에서 김연경을 지도한 인연으로 2022~23시즌 도중 부임한 아본단자 감독은 우승 목전에서 물러나자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2022~23시즌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지만, 2연승을 거둔 뒤 3연패를 당하면서 다 잡았던 우승컵을 내줬다. 아본단자 감독은 이 경험을 통해 한국 리그에서 어떻게 팀을 꾸려야 할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정규리그 1위도 좋지만,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길게 보려고 한다”고 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해 실패를 발판 삼아 이번 시즌을 단단히 준비했다. 다니엘레 투리노 코치를 영입하는 등 18명이나 되는 팀 스태프(통역·매니저 포함)를 꾸렸다. 다른 6개 구단 평균(12.7명)에 비교하면 월등하게 많은 숫자다. 그는 “한국 리그는 코치만큼 피지컬 및 메디컬 스태프가 중요하다. 2, 3일에 한 번 경기를 하고 주전 선수 6~7명이 정해져 있다. 외국인 선수는 2명인데 교체가 어렵다. 그래서 선수단 건강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2022~23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연경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 했다. 하지만 아본단자 감독은 베테랑 김연경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김연경은 결국 팀에 남았다. 아본단자 감독은 “‘야키(김연경의 별명)’가 젊지 않다는 것도 고려했다. 체력적인 부담을 줄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흥국생명은 트레이드를 통해 세터 이고은을 데려오고, FA 리베로 신연경도 영입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선 순번이 낮았지만, 장신인 투트크 부르주(튀르키예)를 뽑아 높이를 보강했다. 아시아쿼터로 뽑았던 황루이레이는 컵대회가 끝나자마자 아닐리스 피치(뉴질랜드)로 교체했다. 외국인 선수와 손발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팀 전력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아본단자 감독은 “새로운 선수들이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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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세대교체를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4년 차 아웃사이드 히터 정윤주(21)가 대표적이다. 정윤주는 서브 리시브가 약하지만, 공격력이 좋다. 김연경과 신연경의 수비력을 믿고 정윤주를 김연경의 대각선 위치에 포진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정윤주는 24일 현대건설전에서 21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아본단자 감독은 “윤주는 잠재력이 큰 선수다. 자기 능력을 믿으면 좋겠다”면서 “힘든 상황을 거치면서 성숙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답게 아본단자 감독은 코트 위에서도 열정적이다. 특히 작전 타임 때는 큰 목소리로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치와 통역이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설 때도 있다. 그는 “감독으로서 확실히 지시를 내려야 한다. 또,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강해지도록 일부러 압박하기도 한다”며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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