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두까기' 1막, 발레하는 내가 봐도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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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요정이 읽어주는 호두까기 인형'을 함께 공연하는 작곡가 오은철(왼쪽)과 안무가 김용걸. 이들은 "아이들이 객석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소리내도 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족이 다 함께, 특히 아이들이 많이 보는 발레죠. 그런데 1막이 좀 어려워요. ‘내가 어려운데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린이를 위한 '호두까기 인형' 공연하는 김용걸ㆍ오은철

발레리노 김용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새로운 ‘호두까기 인형’을 안무해 선보인다. 어린이를 위한 버전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오은철이 함께 한다.

차이콥스키 음악의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의 단골 발레 공연이다. 올해 연말도 온통 ‘호두까기 인형’이다. 인터파크의 티켓 예매 사이트에 따르면 올 11ㆍ12월의 공연만 전국 66건. 어린아이가 주인공이며 장난감, 설탕, 요정, 꽃의 춤 등이 등장하는 환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가족 공연으로 불린다. 특히 어린 청중에 열려있다. 보통 공연은 초등학생 이상 입장 가능하지만, ‘호두까기 인형’의 경우에는 48개월 이상(국립발레단), 5세 이상(유니버설 발레단)으로 최소 연령을 낮춘다. 객석에 어린이가 많은 공연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발레리노 김용걸은 “정말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좀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김용걸과 오은철은 “어린이 공연 다운 ‘호두까기 인형’을 하나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우선 1막을 대폭 손봤다. “제일 지루한 부분이 1막에서 어른들이 축배를 드는 부분이다. 물론 발레단들이 하는 공연은 여기에 손 댈 수가 없다. 우리는 형식이 다르므로, 많이 생략했다.”(김용걸)

‘호두까기 인형’의 1막은 커다란 트리 밑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성탄을 축하하며 시작한다. 파티 장면만 30분, 잠에 든 주인공 클라라의 꿈 이야기가 30분 정도다. 김용걸과 오은철은 1막 전체가 40분이 채 되지 않도록 축약됐다. 스토리에서 꼭 필요한, 호두까기 인형을 드로셀마이어에게 선물 받는 장면 등은 남겼다.

2막의 길이도 줄어들었다. 김용걸은 “눈송이 군무에 원래 16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5명이 한다. 음악도 길이를 줄이고 가볍게 했다. 꽃의 왈츠도 반복되는 부분을 생략한다”고 했다.

JTBC ‘수퍼밴드2’의 우승자이며 작곡을 공부한 오은철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고 봤다. “다채로운 색이 들어있는 오케스트라 작품이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곡들인데, 새로운 질감을 입혀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18인조의 작은 앙상블로 편성을 바꿔 편곡했고, 보다 기민한 소리를 만들었다. “보통 발레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의 피트에 들어가 있어 안 보이지만, 이번에는 무대 위로 올려 무용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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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로열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전세계에서 12월의 단골 공연이다. 로이터=연합뉴스

1892년 초연한 이 작품에 대한 각색이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김용걸은 “예를 들어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이 나서서 한다면 몰라도, 이런 식의 시도는 눈치가 보이기는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관객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믿음은 굳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해 10시 30분까지 발레 공연을 보는 수요는 이제 많지 않다. 물론 전통은 보전해야 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 이번 공연은 1시간 10분 남짓이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소개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끈 헤이지니가 극 중의 설탕요정이자 내레이터로 참여한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김용걸은 “해외에서도 이런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파리 발레단에서 은퇴한 친구가 있는데 ‘나의 첫 백조의 호수’라는 공연을 지금 하고 있다. 2시간짜리를 90분 정도로 줄인 공연이다. 차이콥스키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발레 입문자를 위한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김용걸과 오은철은 9월 ‘피아노 파드되’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 오은철의 음악에 김용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창작 발레를 선보이는 무대였다. 무용과 함께 하는 첫 공연이었던 오은철은 “사람의 몸으로 하는 예술이 가지는 독특한 호흡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걸은 “오은철의 음악을 들으면 스토리가 나온다”고 했다. 현대 음악의 작곡을 하던 오은철은 영화 음악에 이끌리며 음악의 방향을 틀었다. “어떤 장면을 보면 자연히 악기ㆍ음색ㆍ분위기ㆍ템포가 따라서 떠오른다”는, 스토리에 강한 뮤지션이다.

이들은 왜 아이들에게 발레를 권하는 걸까. 김용걸은 “사람들은 ‘아름답다’ ‘멋있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만 그 정의를 내릴 때 떠올릴만한 장면이 별로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봤던 예술의 장면이 각인 된다면 그 표현을 구체화할 기억이 생기게 된다. 삶이 달라진다.” 그는 또 “어른에게도 현실을 잊을 순간이 필요한데 발레 공연이 그 순간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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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요정이 읽어주는 호두까기 인형'을 함께 공연하는 작곡가 오은철(왼쪽)과 안무가 김용걸. 이들은 "아이들이 객석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소리내도 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용걸과 오은철은 특히 “우리 공연을 보며 얼마든지 떠들고 소란을 피워도 된다”고 강조했다. “한 관객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와 함께 ‘호두까기 인형’을 봤는데 아이는 지겨워 해 자꾸 움직이고, 다른 청중이 항의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오은철) 이번 무대는 객석의 조명을 밝게 하고, 무대 위 발레리나들이 모두 객석까지 내려가 청중 가까이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오은철은 “아이들의 반응이 가장 정확하다 생각한다. 웃고 있는 어린이 청중을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설탕요정이 읽어주는 호두까기 인형’은 24일 첫 무대에 이어 30일 오후 6시에 서울 잠실의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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