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증 유죄, 교사는 무죄…이재명과 비슷했다, 청산가리 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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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자신이 요청한 증언 사항과 관련해 김진성이 위증을 할 수도 있을 거라 인식·예견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 인식·예견만으로 각 위증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25일 판결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은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김진성씨의 위증은 유죄, 이 대표의 위증교사는 무죄’로 일단락됐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33부(부장 김동현)는 25일 김씨가 이 대표의 ‘요청’을 받고 위증을 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면서도, ‘요청’한 이 대표에겐 “통상적인 방어권 범위 내 증언 요청”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범인 김씨가 실제로 위증을 했고(‘정범의 실행행위’) ▶그 전에 이 대표가 네 차례 통화 등으로 증언을 요청하며 ‘교사행위’를 한 것까진 인정했지만, 이 대표에게 ▶거짓인 걸 알면서도 김씨를 시켜 범죄를 실행하려는 ‘고의’는 없었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 봤다. 교사범의 고의는 정범을 통해 구체적인 범죄를 실행하겠단 고의(‘정범의 고의’)와 정범에게 범죄를 마음먹게 하려는 고의(‘교사의 고의’) 모두 필요한데, 이 대표에겐 둘 다 없었다고 봤다.
부정 취업 요청했지만 교사는 무죄…李 사건처럼 ‘고의’ 쟁점
4년 전 부산고법에서도 교사범의 고의가 없었다고 봐 ‘정범은 유죄, 교사범은 무죄’ 결론에 이른 사례가 있다. 부산시 금고 재지정 이슈가 있던 은행이 시청 세정담당관의 아들을 부정채용한 일로 부행장 A씨와 공무원 B씨가 각각 업무방해와 업무방해교사로 기소됐다. “우리 아들이 원서 냈으니 챙겨봐 달라”던 B씨는 아들이 서류부터 떨어지자 “그것도 못 해주나, OO은행에서 내한테 이럴 수 있나”라고 했다. A씨는 점수조작으로 B씨 아들을 서류 합격시켰고 이후 블라인드 면접에서 최하위권이었음에도 임원 면접에 올려 최종합격시켰다.
A씨의 업무방해는 1·2심 모두 인정했으나, B씨의 업무방해교사 혐의에 대해선 1·2심의 판단이 갈렸다. 부산지법은 “당시 시점에서 아들을 합격시키려면 전형 결과 조작밖에 없고, B씨 역시 이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2019년 1월). 하지만 부산고법은 “B씨의 행위는 단순한 채용 부탁을 넘어 정범의 고의를 가지고 A씨로 하여금 미자격자인 아들을 면접에 응시하게 해 면접관들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로 특정된 교사행위가 아니다”며 무죄로 뒤집었다(2020년 2월).
범죄행위 예견 못 했다면…미필적 고의도 부정
교사범은 정범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범행하는지까지 알고 있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범의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3차 면접이 블라인드라는 점 등 채용 절차에 대해 알지 못하는 B씨가 한 부탁은 A씨가 주도한 업무방해 범행에 대한 교사행위로 볼 수 없다”며 “B씨로선 부정 취업엔 정원 외 채용이나 가산점 부여 등 다른 편법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수 있고, 고위 임원인 A씨에게 두 차례 부탁해 놓은 이상 별 잡음 없이 조용히 채용될 거란 기대를 가졌을 뿐 A씨가 면접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행위로까지 나아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봤다.
25일 이 대표에게 무죄를 준 재판부도 “교사자의 정범의 고의는 막연히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행위의 주체, 객체, 행위, 결과 등 범죄 구성요건적 표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특정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와 김씨의 통화 당시 김씨가 증언할 것인지 여부, 구체적으로 어떤 증언을 할 것인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고, 증언 내용은 김씨가 이 대표의 변호사와 통화하며 먼저 언급한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대표는 김씨가 위증을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하라”로 기소, 유·무죄 갈린 판례 보니
이 대표가 김씨에게 “기억을 되살려 봐라” “그냥 있는 대로 말해 달라” 했던 것처럼, “사실대로 이야기하라”는 말로도 교사범으로 기소될 수 있다. C씨는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마시고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와 동생 D씨에게 쏠린 의심을 옆집 아저씨 쪽으로 돌리려고 이모를 시켜 동생에게 “엄마 죽인 범인 잡아야 할 것 아니냐, 아저씨랑 무슨 일 있었으면 사실대로 얘기하라, 성추행 당하지 않았냐”고 했다. “사실 당했다”며 그날로 파출소에 간 동생 D씨가 먼저 무고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순천지원, 2010년 2월).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광주지법은 무고교사 혐의로 기소된 언니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3년 1월). “C씨는 D씨가 당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확인하고자 한 것이고, 이를 묻는 것만으로 D씨가 허위의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보기 어렵다”고 봤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라”는 속 뜻이 실은 거짓임을 양 쪽 모두 알고 있었다면 위증교사죄가 인정될 수 있다. 한 회사 대표이사는 2억원대 돈을 돌려달란 민사소송에 걸리자, 같은 회사 이사를 증인으로 불러 사전에 신문사항을 읽어주며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가 나란히 위증교사와 위증으로 형사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대표는 자신의 차용 사실을 알고 있는 이사에게 간접적으로 위증을 교사한 것”이라며 둘 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2015년 9월).
다만 정범과 교사범이 모두 재판에 넘겨진 뒤 한 쪽만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형사사건 1심 무죄 선고율은 3% 안팎이다. ‘정범은 유죄, 교사범은 무죄’인 판결문엔 정범이 스스로 범죄를 저지를만한 자체 유인이나 배경이 설명돼 있다. 은행 부정채용 사건에서는 금고 재선정이나 시와의 원활한 업무 관계 형성이, 성추행 무고 사건에서는 사실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살해한 D씨가(존속살해로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무고한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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