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능 후 흥행 역주행 ‘청설’... “도파민 중독시대, 낭만과 순수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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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6일 개봉)은 청각장애인 수영선수 동생 가을(김민주)과 함께 살아가는 여름(노윤서)이 26살 동갑내기 용준(홍경)과 풋풋한 첫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는다. 사진 KC벤처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8월의 크리스마스’ ‘클래식’ 같은 로맨스‧멜로 영화가 사랑받던 시기의 낭만과 순수를 가져오고 싶었죠.”
‘무공해 영화’란 입소문 속에 장기 흥행에 돌입한 ‘청설’(6일 개봉)의 조선호(47) 감독의 말이다. 2010년 국내 개봉한 동명 대만영화(2009)를 15년 만에 리메이크한 청춘 영화다. 수어를 사용하는 20대 남녀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을 한국 배경으로 되살려, 최근 대만‧일본 로맨스에 열광해온 10~20대 관객층을 공략했다. 멀티플렉스 CGV 예매 관객 중 20대가 35%, 10‧30대가 각각 19%로 뒤를 이었다.
대학 수능시험(14일) 전날인 예비소집일부터 관객수가 전일 대비 30% 증가하며 ‘수능 수혜작’이 됐다. 흥행 역주행에 힘입어 개봉 21일 만에 72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며, 원작 관객수(2018년 재개봉까지 누적 2만3900명)를 30배 이상 뛰어넘었다.

영화 '청설' 72만 관객 돌파 #수능 후 흥행 역주행 수혜작 #도파민 중독 시대 '무공해 영화' #"대만 원작 순수함 살리고 싶었죠"

수능 후 흥행 역주행…"도파민 시대, 여백의 영화"

“청량감 가득한 청춘 영화” “대만 원작 못지않게 (한국 주연배우) 홍경‧노윤서 합이 좋아 설렜다” “훌륭한 연기와 소리에 대한 세심한 연출이 극을 풍부하게 채운다” 등 멀티플렉스 예매 관객의 호평이 줄을 잇는다.
“농인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댓글과 함께 “청각장애인들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비장애인이 대사하는 장면도 자막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달린다. 청각장애 수영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을 뒷바라지하는 여름(노윤서), 언니가 자기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가을,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도우며 여름 자매와 교류하는 용준(홍경) 등 극 중 인물들의 선량함을 빼닮은 관객 반응이다.
개봉 이후 전화 인터뷰로 만난 조 감독은 “도파민 중독 시대, 여백과 여운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실이 절망이니까 오히려 희망을 원할 수 있잖아요. 판타지 같고 너무 착한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도 착하고 배려심 많은 분들이 있는데 잘 모르고 눈 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죠. 관객에게 기분 좋은 느낌, 감성을 주길 바랐습니다.”

"평범해서 더 특별"…수어가 설렘 끌어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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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6일 개봉)에선 청각장애가 있는 수영선수 가을(김민주, 오른쪽 두번째), 언니 여름(노윤서, 왼쪽 두번째) 자매를 중심으로 농인들의 수어 소통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고충도 그려진다. 다만, 결말 반전에 대해선 영화 앞부분의 진정성이 훼손된다는 일부 지적도 나온다. 조선호 감독은 “어려웠던 지점이었다”면서 “주인공들이 서로 오해하는 상황에선 서로가 조심스러웠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부분의 배신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앞부분에 여러 힌트를 넣었다”고 언론시사 당시 설명했다. 사진 KC벤처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홍길동의 후예’(2009) ‘더 웹툰: 예고살인’(2013) 조감독을 거쳐 장편 데뷔작 ‘하루’(2017)까지 범죄‧스릴러를 주로 해온 그는 "로맨스가 액션·스릴러보다 어려운 장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복잡한 기교보다 쉬운 언어로 이야기 본연의 매력이 담백하게 이해되도록 신경 썼다”고 했다.
캐릭터와 이미지의 결이 닮은 20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수영장‧도시락 가게‧공원 등의 일상 공간으로 영화를 채웠다. ‘D.P.’(2021, 넷플릭스), ‘약한영웅’(2022, 웨이브), ‘악귀’(2023, SBS) 등 무거운 장르물을 주로 해온 홍경으로부터 반전 캐릭터를 끌어냈다. '일타 스캔들'(2023, tvN)과 ‘우리들의 블루스’(2022, tvN)로 눈 도장을 찍은 노윤서,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 김민주의 자매 호흡도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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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의 주연 배우 김민주는 영화 홍보차 JTBC 뉴스에 일일 기상캐스터로 등장해 능숙한 수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 JTBC 뉴스 유튜브 채널 캡처

‘청설’에서 “평범하기에 더 특별해지는 순간들”(조 감독)을 빚어낸 건 수어 연기와 음성의 빈자리를 대신한 사운드다. 주인공들이 말없이 눈을 맞추고 몸짓에 집중하는 순간들이 풋사랑의 설렘을 끌어올린다. 지난달 ‘청설’ 언론시사회에서 노윤서는 “수어는 표정이 70%를 차지한다. 촬영 전 2~3개월 간 수어 선생님들과 밥도 같이 먹으면서 실제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홍경은 “수어할 땐 상대의 눈을 바라봐야만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알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잔상을 남겼다”고 했다.
조 감독은 “수어 통역사, 농인 선생님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수어 대사를 영상으로 녹화해주신 걸 스태프들과 사전에 공부하다 보니 촬영 10회차쯤엔 수어의 의미와 감정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여름의 매미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등이 음성 대사의 빈자리를 메우며 서정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비장애인인 용준이 귀를 막고 청각 장애를 체험하는 장면, 여름 자매와 함께 클럽에 가 음악을 스피커의 진동으로 느끼는 장면 등은 사운드를 억누른 듯한 효과를 통해 농인의 세상을 관객도 엿보게 한다. 원작 이후 크게 발달한 사운드 기술을 십분 활용했다.

"본인 안 챙기면서 가족 챙기는건…" K장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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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대만 영화의 한국판 리메이크 '청설'(6일 개봉)이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락집을 운영하는 용준의 부모(정혜영, 현봉식, 왼쪽부터)도 영화에 선량한 유머를 불어넣은 숨은 공신이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원작 팬들을 사로잡은 “네가 널 생각 안 하니까, 내가 네 생각만 하게 되잖아”에 더해 명대사도 늘었다. 여름의 청각장애에 대해 용준의 엄마(정혜영)는 “멀쩡한 사람도 말 안 통하는데, 사람만 좋으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동생에게 헌신해온 여름이 “본인을 안 챙기면서 가족들을 챙기는 건 부담스럽다”는 조언을 듣는 장면에선 “K장녀로서 공감했다”는 관람평도 나온다.
‘청설’은 개봉 4주차인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4위권을 지켜왔다. ‘위키드’ ‘글래디에이터 2’ 등 할리우드 대작, 청불 스릴러 ‘히든페이스’ 등 신작 공세 속에서 순제작비 45억원의 저예산 영화가 이같은 성적을 낸 건 고무적인 일이다. 조 감독은 “시대가 변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선 관객을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청설’의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극장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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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하루'에 이어 두번째 연출작 '청설'(6일 개봉)로 돌아온 조선호 감독.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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