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백 있는 영화로 도파민 중독 시대 해독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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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춘 남녀의 풋풋한 수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 ‘청설’(6일 개봉)이 대학수능시험을 치른 10대와 20·30대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 KC벤처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8월의 크리스마스’ ‘클래식’ 같은 로맨스·멜로 영화가 사랑받던 시기의 낭만과 순수를 가져오고 싶었죠.”

‘무공해 영화’란 입소문 속에 장기 흥행에 돌입한 ‘청설’(6일 개봉)의 조선호(47) 감독 말이다. 2010년 국내 개봉한 동명 대만영화(2009)를 15년 만에 리메이크한 청춘 영화다. 수어를 사용하는 20대 남녀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을 한국 배경으로 되살려 10~20대 관객층을 공략했다. 멀티플렉스 CGV 예매 관객 중 20대가 35%, 10·30대가 각각 19%로 뒤를 이었다. 대학 수능시험(14일) 전날인 예비소집일부터 관객 수가 전일 대비 30% 증가하며 ‘수능 수혜작’이 됐다. 흥행 역주행에 힘입어 개봉 21일 만에 72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며, 원작 관객 수(2018년 재개봉까지 누적 2만3900명)를 30배 이상 뛰어넘었다.

“청량감 가득한 청춘 영화” “대만 원작 못지않게 (한국 주연배우) 홍경·노윤서 합이 좋아 설렜다”는 등 멀티플렉스 예매 관객의 호평이 줄을 잇는다. 청각장애 수영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을 뒷바라지하는 여름(노윤서), 언니가 자기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가을,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도우며 여름 자매와 교류하는 용준(홍경)이 극을 이끈다. 조 감독은 “도파민 중독 시대, 여백과 여운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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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

‘홍길동의 후예’(2009) ‘더 웹툰: 예고살인’(2013) 조감독을 거쳐 장편 데뷔작 ‘하루’(2017)까지 범죄·스릴러를 주로 해온 그는 “로맨스가 액션·스릴러보다 어렵다”며 “그렇기에 복잡한 기교보다 쉬운 언어로 이야기 본연의 매력이 담백하게 드러나도록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캐릭터와 이미지의 결이 닮은 20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수영장·도시락 가게·공원 등의 일상 공간으로 영화를 채웠다. ‘D.P.’(2021, 넷플릭스), ‘약한영웅’(2022, 웨이브), ‘악귀’(2023, SBS) 등 무거운 장르물을 주로 해온 홍경으로부터 반전 캐릭터를 끌어냈다. ‘일타 스캔들’(2023, tvN)과 ‘우리들의 블루스’(2022, tvN)로 눈 도장을 찍은 노윤서,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 김민주의 자매 호흡도 자연스럽다.

‘청설’에서 “평범하기에 더 특별해지는 순간들”(조 감독)을 빚어낸 건 수어 연기와 음성의 빈자리를 대신한 사운드다. 주인공들이 말없이 눈을 맞추고 몸짓에 집중하는 순간들이 풋사랑의 설렘을 끌어올린다. 지난달 ‘청설’ 언론시사회에서 노윤서는 “수어는 표정이 70%를 차지한다”며 “촬영 전 2~3개월간 수어 선생님들과 밥도 같이 먹으면서 실제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촬영 현장에 상주하는 수어 통역사, 농인 선생님이 녹화해 준 수어 대사를 스태프들과 사전에 공부하다 보니 촬영 10회차쯤엔 수어의 의미와 감정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여름의 매미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등이 음성 대사의 빈자리를 메우며 서정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비장애인인 용준이 귀를 막고 청각 장애를 체험하는 장면, 여름 자매와 함께 클럽에 가 음악을 스피커의 진동으로 느끼는 장면 등에서는 사운드를 억누른 듯한 효과를 통해 관객도 농인의 세상을 엿볼 수 있다.

원작 팬들을 사로잡은 “네가 널 생각 안 하니까, 내가 네 생각만 하게 되잖아”에 더해 명대사도 늘었다. 여름의 청각장애에 대해 용준의 엄마(정혜영)는 “멀쩡한 사람도 말 안 통하는데, 사람만 좋으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동생에게 헌신해온 여름이 “본인을 안 챙기면서 가족들을 챙기는 건 부담스럽다”는 조언을 듣는 장면에선 “K-장녀로서 공감했다”는 관람평도 나온다.

‘청설’은 개봉 4주차인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4위권을 지켜왔다. ‘위키드’ ‘글래디에이터2’ 등 할리우드 대작, 청불 스릴러 ‘히든페이스’ 등 신작 공세 속에서 순제작비 45억원의 저예산 영화가 이런 성적을 낸 건 고무적인 일이다. 조 감독은 “판타지 같고 너무 착한 영화라고 하지만, 현실이 절망이니까 오히려 희망을 원할 수 있다”며 “기분 좋은 느낌,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극장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설’은 대만 작품을 리메이크한 한국영화 중 최초로 내달 6일 대만에서도 개봉한다. 홍콩, 일본, 마카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몽골 등 해외 개봉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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