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0년 된 보물 살려내자, 파키스탄 감동…'한국의 황금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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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1층 복원실. 이곳 학예연구관 3~4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복제 작업에 한창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쪽빛 표지를 비롯해 누르스름하게 변색한 속지까지 실물과 100% 가깝게 복제하는 작업이다. 나미선 학예연구관은 “조선왕조실록은 내용물 유실을 막기 위해 한 해 두 권씩 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권을 살려내는데 반년이 걸리고 비용은 5000만원 이상 든다.
오래된 문서를 살려내는 일도 복원실 주요 업무다. 누렇게 떠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이승만 정부 당시 문서를 이미지비교감식기(VSC)에 넣자 대형 모니터에 내용이 조금씩 드러났다. VSC는 자외선과 적외선 등 다양한 광원을 이용해 이미지를 복원하는 장비다.
행정안전부가 이날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을 언론에 공개했다. 나라기록관은 국가기록원 산하 4개 보존시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국가기록원은 각 기관에서 이관ㆍ수집한 기록물을 평가ㆍ기술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해 다양한 기록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무회의 기록 등 근·현대 기록물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등도 보관하는 국내 최대 규모 아카이브(archiveㆍ저장고)다. 국가기록원 산하 4개 보존시설 서가(書架) 길이를 모두 합하면 329.9㎞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이 가운데 나라기록원 서가 길이는 237.3㎞다. 국가기록원은 조선왕조실록과 새마을운동 기록물, 5ㆍ18민주화운동기록물 등 국내에 있는 세계기록유산 18건 중 7건도 소장한다. 전체 기록물은 총 740만7488철(綴ㆍ묶음)에 달한다. 종이로 된 문서를 비롯해 각종 필름에 담긴 자료 등 저장물 종류도 다양하다.
파키스탄 정부 감사패...대영박물관도 국가기록원에 복원 의뢰
국가기록원은 기록물 보관을 넘어 자료 복원과 디지털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도 ‘대한늬우스’등 과거 필름 영상물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고연석 복원관리과장은 “필름 등은 내구연한이 30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유실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변질된 필름을 복원하기 위한 별도 클리닝룸도 갖추고 있다. 덕분에 국가기록원은 근ㆍ현대기록물 복원과 처리에 있어 세계 제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다양한 자료에 대한 복원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복원 요청이 들어온 자료는 총 514건(3만2030매)에 이른다. 최근에는 파키스탄 정부가 소장한 19세기 이슬람 경전(코란) 필사본을 9개월여에 걸쳐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현지에서는 국보급 보물이란 평을 듣는 사료다. 속지와 분자구조가 비슷한 한지를 활용하고, 표지는 오리나무 열매를 끓여서 낸 염료로 염색했다. 고연석 과장은 “중세에서 근·현대로 이행하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고 소개했다. 덕분에 국가기록원은 파키스탄 정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국가기록원 실력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K 복원기술’에 대한 신뢰가 커진 덕에 영국 대영박물관도 협조를 구할 정도다. 현재까지 28개국 537명이 국가기록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중국과 영국 등을 비롯해 업무협약을 맺은 나라도 19개국에 이른다.
디지털화와 일손 부족 등 숙제도 여전
하지만 기존 자료 디지털화 작업은 쉽지 않다고 한다. 이용철 국가기록원장은 “단순히 파일로 변환하는 수준을 넘어 오래된 자료 속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공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했다. ‘검색’ 버튼만으로 고문서 속 콘텐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다. 국가기록원은 전체 기록물 740여만철 중 가치가 있는 240여만철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일손이 부족해 원하는 만큼 속도는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1억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물을 디지털화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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