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두번 망하고 6000억 만진다…'국민엄마' 김혜자 만든 그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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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신통한 사업 아이템은 누가 발굴했을까. 창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을까. 위기를 극복한 묘수는 무엇이었을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해 드는 의문입니다. 이럴 때 또 하나 궁금증이 생기지요. 그의 첫 직장은 어디였고, 어떤 계기로 사표를 낸 다음 새 출발을 결정했냐는 겁니다.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콘텐트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 기업人사이드(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7)는 ‘사람’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번에는 한창 나이에 잘나가던 직장에 사직서 내고 독립한 기업인의 속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997년 4월 2일, 마흔 살 생일에 사표를 던졌다. ‘이제는 독립해야 할 때’라는 호기가 발동했고,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라는 장난기도 조금은 작동했다.
누구보다 잘나가던 때였다. 1982년 국내 1위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에 입사해 차장, 부장을 연거푸 특별 승진했다. 미국 연수를 다녀왔고, 광고기획국장으로 역시나 특진했다. 서른여덟 살, 사내 최연소였다. 이후 삼성그룹이 총력을 다해 준비하던 삼성자동차 광고 기획을 맡았으니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인포머셜1인자’ 심범섭 인포벨 대표
에이스 광고맨→신불자→6000억 사나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잘나가던 광고맨 심범섭(66)은 이후 10년간 고전했다. 그해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독립에 차질을 빚었다. 캐릭터 개발·유통, 게임 등에 손을 댔으나 실속이 없었다. 그 중에 3년은 파산 상태였다. 그것도 “처절하게 망했다”.
손해 본 금액만 20억원 가까웠다.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서울 일원동에 있던 서른 평 아파트가 은행에 넘어갔다. 부랴부랴 산비탈 연립주택 반지하로 옮겼다. 이튿날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시내를 이동할 땐 지하철만 탔고, 지하철역에서 파는 가래떡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다고 신용불량자로 끝난 게 아니다. 보험회사에서 제공한 종자돈 500만원으로 서울 수서역 인근에 24평짜리 오피스텔을 얻고, 6개월 만에 보란 듯 다시 일어났다. 상품 정보(Information)와 TV 광고(Commercial)를 접목한 ‘인포머셜’ 시장을 개척하면서다. 그는 2008년 6월 1인 기업으로 출발, 지금은 순매출 1400억원대, 취급액 6000억원으로 회사를 키웠다. 인포벨은 연간 2조3000억원대로 추정되는 인포머셜 시장에서 25% 점유율로 단연 1위다.
대표적인 히트 상품은 전립선 관련 건강기능식품인 ‘쏘팔코사놀’, 비타민 화장품 ‘미백순수’, 드립커피 ‘그라시아스’ 등이다. 가수 남진을 모델로 세운 쏘팔코사놀은 2019년 말 론칭 이후 누적 매출이 1500억원이 넘는다. 심 대표는 “제약·식품 회사 50여 곳이 뛰어든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쏘팔코사놀이 1등”이라며 “고양이가 사자를 물리친 격”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상품의 본질에 충실한 겁니다. 지난해 5팩들이 양곰탕을 4만9900원에 팔았습니다. 지금은 같은 가격에 7팩이 들어가요. 고객 평가 점수가 4.3점(만점 5점) 미만이면 판매를 중단합니다. 미국의 유명 카피 라이터인 클로드 홉킨스는 100년 전 ‘못 파는 광고는 쓰레기’라고 직격했습니다. 제가 제도권과 재야를 모두 거쳤잖아요.(웃음) 인포머셜의 목표는 단 하나, 잘 파는 것입니다. 이런 마인드를 지금은 제도권에서도 인정해요. 결국 승부는 숫자에서 갈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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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2043
‘LG 용팔이’ 박용석 DMS 대표
세정 장비 하나로 4조 신화 일구다
입사하고 나서 15년 내내 디스플레이 공정 개발에만 매진했다. 그러다 사표를 냈다. 고향인 경북 경산에서 사과 농사를 지을 요량이었다. 아버지가 평생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옛 동료 네댓 명이 ‘용팔이 형님’을 가만두지 않았다. “15년 동안 쌓아온 내공(기술)이 억울하지 않으냐”고 따지듯 물었다. 회사를 차리자고 채근했다.
1999년 7월, 세계 1위 디스플레이 세정 장비 업체 DMS는 이렇게 탄생했다. 박용석(66) DMS 대표는 “처음부터 액정표시장치(LCD) 장비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배경이 있었다. ‘박용석 사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디스플레이 분야 1세대. 그는 1984년 LG그룹에 입사해 15년 내내 ‘디스플레이 외길’을 걸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사내에서 ‘용팔이 형님’으로 불렸다. 거칠게 폭력을 써서 붙은 별명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지독해서다. 바라던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퇴근할 줄 몰랐다. 한 달 내내 연구소에서 먹고 잔 적도 있다. 후배들에게도 “단내나도록 일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HDC’는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세정기’를 통칭하는 용어다. 세정기(Cleaner)는 물과 자외선을 쪼여 LCD 유리기판 위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장비다. DMS가 2001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고집적 세정 장비(HDC·High Density Cleaner)’는 세정기 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C는 불과 4년 만에 60%대 시장점유율로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 지금까지 HDC의 누적 판매 대수는 3000여 대, 대당 15억원쯤 하니까 총매출이 4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외 특허가 1000여 개다.
어떻게 이런 신통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박 대표의 대답은 명쾌하다. “경쟁사 제품을 베끼겠다는 생각을 버렸어요. 모방으로는 잘해야 2등 아니겠습니까? 제조 공정을 합치고, 부품 위치를 전환하는 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최근엔 ‘어드밴스드(신형) HDC’를 선보였다. DMS가 세정 장비 분야에서 내놓은 이른바 ‘초격차 해답’인 셈이다. 박 대표는 지난 2년 내내 신제품 개발을 지휘했다. “(어드밴스드 HDC는) 중압감과 의무감, 사명의식을 갖고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였어요. 결과도 만족스럽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쏘나타를 타다가 신형 전기차로 업그레이드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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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0328
‘싸움닭’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중고 반도체 장비 거래해 2500억 매출”
대학 졸업 후 10년 직장 다니는 동안 8번 사표를 냈다. 줄잡아 15개월에 한 번은 회사를 때려치운 셈. 조금 과장해서 ‘사표왕(王)’이다. 대개는 신사업을 제안했다 묵살당하거나 상사에게 들이받았다가 그만두는 식이었다.
소속 부서장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부장님 이건 아닙니다” “전무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며 소신을 밀어붙였다. 한직으로 밀려났고, 결국 회사를 나오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러면서 마음에 품은 게 있다. 나중에 회사를 차리면 디베이트(토론)가 넘치는 문화를 만들겠다-.
2000년 초 20여 억원을 투자받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창업했다. 처음엔 국내 최초의 글로벌 기업간 거래(B2B) 사이트를 지향했다. 마장동 돼지고기부터 청바지 원단, 공작기계까지 다루지 않는 게 없었다.
현실은 전혀 신통치 않았다. 아이템별로 전문성이 필요한 데다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던 것. 설립 첫해 매출이 3억원이 안 됐다. 창업 2년 만에 자본금을 모두 날렸다. 백화점식으론 답이 없다,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신문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전자산업 성장률이 연 13~15%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다른 제조업은 3% 수준이잖아요.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 나온 명대사처럼 ‘한 놈만 패자’고 결심했지요.”
이후 반도체 장비, 그것도 중고 장비에 집중했다. 이렇게 시야를 좁히고, 시선을 거꾸로 돌리니 기회가 찾아왔다. 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TSMC·인텔 등 첨단 공정 팹(제조라인)에서 사용했던 10년 이상 된 구형 장비를 사다가 레거시 반도체 팹에 되판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500억원대.
“중고 반도체 장비와 관련한 원스톱 클러스터를 구축할 겁니다. 경기도 용인 본사 규모를 현재의 네 배인 26만㎡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파츠(부품) 유통 사업을 시작하고, 수리·재(再)제조·검사·리퍼비시(재정비) 등을 더해 2030년 매출 1조원을 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토론이 넘치게 하겠다는 그의 초심(初心)은 어떤 회사를 만들었을까. 이 회사 모든 임직원 100여 명은 영문 이름으로 호칭한다. 서로 ‘토미’ ‘브루스’라고 부르며 대화를 시작한다. 사장실도, 부사장실도 따로 없다. 대신 회의실은 빵빵하다. 대형 스크린과 화상 솔루션 같은 시각·음향 설비 갖추는 데만 6000만원을 들였다. “싸워도 좋으니 화끈하게 토론하고, 확실하게 결론 내라”는 취지다.
“위계질서를 찾다간 성장은 물론 생존도 어렵습니다. 사장과 디베이트(토론) 안 하고, 자기 의견 제시 안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혼나는 회사가 서플러스글로벌입니다.”
☞부장 들이받고 연 2500억 번다…‘퇴사왕’ 김 대리가 만든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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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00만원 벌어도 망했다…순댓집 여사장 ‘오뚝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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