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4억 주사 맞혀야 산다는데…생존율 30% 다섯살, 기적의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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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자체 생산 카티 치료를 받은 이지한(5) 군. 임미경씨 제공

“엄마 나 안 아프게 되면, 어른이 되면 KTX 운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경북 구미시에 사는 5살 지한이는 요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한이는 지난해 5월 배가 아프다고 해서 동네의원에 갔다가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거기서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다. 한 달 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전장유전체검사(모든 유전자를 검사) 결과 치료가 어려운 고위험군이었다. 지한이 엄마 임미경(45)씨는 “생각도 안 해 본 백혈병인데 치료도 어렵다니,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수없이 반복했다. 고열이 나고, 간 수치가 급격히 뛰고 수혈했다. 엄마는 지한이와 거의 매주 서울행 KTX를 탔고, 아빠는 동생(3)을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뒀다.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한이 사례는 이식을 받아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생존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져 선택지가 별로 없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전장유전체검사가 없으면 이런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을 받으면 영구 불임ㆍ탈모 등 합병증을 앓게 될 우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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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형진 교수와 이지한 군. 서울대병원

 강 교수는 CAR-T(카티ㆍ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가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카티는 유전자 세포 치료이다. 환자 혈액에서 뽑아낸 면역세포(T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특정 암세포를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게 하고, 이를 배양해서 환자에게 주입한다. 한 번 주사로 치료가 끝나고, 면역세포가 암세포만 정확하게 공격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 중인 카티 치료제는 7가지인데, 국내에서는 노바티스의 킴리아만 승인 받았다. 비용이 4억원대에 달했으나 2022년 일부 환자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60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한이는 킴리아 건보 적용 대상에 들지 않았다. 강 교수는 ”킴리아는 암세포가 골수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재발성ㆍ불응성 환자에게만 보험이 적용돼 지한이 같은 환자는 사각지대에 빠진다”라고 말했다. 건보가 안 돼 킴리아를 쓸 경우에는 수억 원이 든다.
 다행히 지한이의 카티 치료비와 유전체 검사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2021년 5월 기부한 3000억원에서 나왔다. 지한이는 지난 4월 서울대병원이 자체 생산한 카티 치료제를 맞았다. 엄마 임씨는 “카티 치료를 받고 열이 조금 났고, 다른 후유증은 없다”고 말했다. 지한이는 이후 7개월 간 미세잔존암검사(혈액에 남은 암세포를 찾는 검사)를 받았으나 계속 ‘0’을 유지하고 있다. 임씨는 “지난해 온 가족이 매일 울었는데, 카티 치료 덕분에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미세잔존암 검사가 굉장히 비싸고 카티 치료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는데, 큰 혜택을 받았다. 이건희 전 회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한이는 이제 아프지 않은 내일을 꿈 꿀 수 있게 됐다.
 카티 치료제는 강 교수와 서울대병원 연구팀의 17년 집념의 작품이다. 강 교수는 스승인 김중곤·김선영 교수 등과 함께 2007년 카티 연구를 시작했다. 2021년 국내 최초 고위험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로 승인을 받았고, 2022년 국가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카티 치료제는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치료(환자 5명)로 끝날 뻔했다. 이건희 기부금 덕분에 이어가고 있다. 강 교수는 “국가 연구로 해오던 것이 기부금을 만나 확대되고 꽃을 피우게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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