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디지털? 아날로그 짝퉁일뿐"…'3000억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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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한옥 헤리티지 하우스’ 만든 조정일 코나아이 대표

“디지털은 결국 아날로그의 짝퉁.” 강원도 영월군 북쌍리 10만 평 대지에 국내 최대 한옥 리조트 사업을 일으킨 조정일(62) 코나아이 대표. 물리학도 출신에 평생 디지털로 돈벌이를 해 온 벤처 창업가는 지난 23일 한옥의 매력에 빠진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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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일

온라인 지도 검색창에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를 입력하면 길도 없는 두메산골의 한 지점이 찍힌다. 앞으로는 명승지 선돌이 서 있고, 서강이 휘감고 지나가는 땅이다. 2021년부터 33만9000m²(약 10만 평)에 달하는 이 맨땅이 분주해졌다. 길이 생기고, 상하수도가 연결되고, 전기가 들어왔다. 이윽고 한 채당 327~461㎡에 달하는 독채 한옥 리조트 세 채가 지어지더니 배우 이영애, 장동건·고소영 부부 등 유명 숙박객이 알음알음 찾기 시작했다. 잘 지은 한옥과 앞으로 더 지어질 리조트 규모에 놀란 이들은 총지배인에게 한결같이 묻는다고 한다. “이 한옥을 지은 회장님이 대체 누구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제가 나가서 홍보대사가 될게요.”

여든 넘은, 오랜 경륜의 한옥 대목장도 와서 둘러보더니 감격하며 감사 인사를 한다. 신기술과 신재료를 접목해 한옥의 고질병을 체계적으로 고쳐 나가고 있는 꿈의 현장이어서다. 조 대표와 8년째 한옥을 연구하며 짓고 있는 박의준(55) 대목장은 “목수들 사이에서 영월 프로젝트가 ‘한옥의 마지막 기회’라고 불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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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를 짓고 있는 조정일 코나아이 대표. 김종호 기자

13년 전, 조정일 대표가 한옥을 제대로 짓겠다고 뛰어다닐 때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불청객을 넘어 툭하면 사기꾼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세대 벤처 창업가로, 디지털 업계의 선봉장으로 살아온 그가 왜 영월에서 한옥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시작했나.
“내 집으로 한옥 한 채 지으려다 일이 커졌다. 국제규격의 IC칩 운영체제를 개발해 해외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다. 해외 건축물도 많이 봤는데, 역사가 오래된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양식이 담긴 건축물이 잘 보존돼 쓰이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나도 우리 건축, 한옥을 지어보자 싶었다. 전국 100곳이 넘는 한옥을 답사했는데 문제점이 너무 많았다. 춥고 불편하고 하자 많고. 유명한 목수들을 찾아가 개선할 수 없냐고 물으면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연구를 시작했다.”
과학도 출신으로 마주한 기존 한옥 짓기의 문제는.
“한옥 목수들은 대부분 감에만 의존해 집을 짓고 있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고 물으면 목수들은 ‘그런 게 한옥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라고만 했다. 그래서 목재 관련 해외 논문을 다 찾아봤다. 결국 목재 건조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한옥은 대목(大木) 구조의 집인데, 큰 나무의 속까지 제대로 건조를 못 시키고 있었다. 그런 나무로 집을 지으면 나무가 수축·팽창하면서 변형이 생기고 하자가 발생한다. 내가 목수들한테 ‘나무의 셀룰로스 조직이 어떻고, 나무의 종·횡단면의 건조 속도가 다르니 건조할 때 도료를 발라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다들 욕부터 하는 분위기였다. 하하.”

벤처 1세대의 3000억 한옥 프로젝트

냉·난방 잘 안 되고 불편한 한옥
기존엔 목수 감에 의존해 지어와
7년 스스로 공부, 과학 기반 건축

어떻게 해결했나.
“제대로 만들기 위해 투자부터 했다. 동해 목재 건조공장을 빌려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제대로 말리니 돌덩이처럼 단단해 수작업으로 나무를 자르기 어려워서 단양과 제천에 제재공장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목장을 월급제로 고용해 7년 넘게 연구만 했다. 실험한다고 한옥 두 채를 지었다가 부수기도 했다. 하다 보니 단순히 집 한 채 지을 투자 수준을 넘어서게 됐다. 공간을 키워서 한국 문화공간으로 제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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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채 한옥 객실 아래로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 호텔이 지어지고 있다. 김종호 기자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총 18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되고 있다. 현재 독채 한옥(종택) 두 채가 있는 1구역과 궁궐 콘셉트의 한옥 ‘선돌정’이 있는 2구역이 완공됐다. 14개 객실이 있는 한옥 호텔(3구역)은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건축 면적은 1695㎡로, 한옥의 길이만 74m에 달하는 최대 규모의 한옥 호텔이다.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만 1000억원, 2028년 완공되기까지 총 투자액은 3000억원으로 예상한다.

왜 한옥인가.
“나는 디지털로 평생 돈벌이를 해왔다. 그런데 디지털은 결국 아날로그의 짝퉁이다. 사람들의 감각은 아날로그여서, 디지털 세상이 고도화될수록 아날로그의 향수를 더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런 아날로그식 문화공간이 중요한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전 세계 돌아다녀 봐도 결국 감동하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공간이다. 한국 건축의 힘은 세다. 한옥의 목구조 자체가 워낙에 세서 다른 장식은 다 묻힌다. 맨 얼굴 자체가 예쁜 사람 같달까. 하지만 잘 못 지으면 골칫덩어리가 되는 게 한옥이다. 그래서 돈 있는 회장님들을 만나면 ‘한옥을 지으라’고 설득한다. 한옥이 더 발전하려면 자본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나는 이 현장만 오면 신나고 즐겁다. 소프트웨어는 1000억원을 투자해도 소스코드만 남고 아무것도 안 남는데, 여기는 이렇게 멋진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남보다 하루를 더 길게 사는 것 같다.
“일의 맥락을 보고 집중해야 할 때 집중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일의 본질과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사업을 하면서 그런 역량이 키워진 것 같다. 마라톤을 보면 전속력으로 달려서는 완주할 수 없지 않나. 기획 설계할 때 집중해서 직접 하고, 기초공사 들어가면 신경 안 쓰고, 다시 한옥이 앉혀질 때 바짝 집중하고. 주중엔 여의도 사무실에서 일하고, 주말엔 영월 현장에 주로 온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는 골프도 안 친다.”

내 한옥 한 채 지으려다 여기까지

카드·여권 IC칩 세계 4위 기업 대표
출장 다니며 세계 건축 문화에 매료
한국의 대표 공간은 한옥으로 봐

수학과 물리가 재미있어 물리학과를 갔다고 했다. 수학 공식 하나로 세상을 함축해 설명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무렵 공부냐, 취업이냐 갈림길에서 조 대표는 취업을 선택했다. 조 대표의 첫 직장은 대우정보통신 기술연구소였다. 막 컴퓨터가 생길 무렵,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그렇게 10년을 다니다, 전세 사기를 당하면서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았다. “전세자금을 홀랑 날리고 본가의 방 한 칸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가장으로 돈을 더 벌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분야를 찾았다. 버스 회수권을 쓰던 시절, 교통카드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했다. 회사를 코스닥 상장까지 시키고, IC칩 운영체제 기술 개발에 나섰다. 디지털 정보의 위·변조를 막을 수 있는 칩 기술로 신용카드·전자여권·통신장비 등에 들어간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우리 회사 제품을 다 쓰고 있다고 보면 되고, 해외에서도 매출의 상당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코나아이의 지난해 매출은 2802억원으로, IC칩 운영체제로 세계 4위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조 대표는 2022년 『대한민국의 붕괴』라는 책도 출간했다. 교수 및 박사급 연구진으로 팀을 꾸려 1년6개월간 인구 문제 관련 데이터 분석을 했다. 위기감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어떤 위기감이었나.
“10년 전부터 IT 전문가를 구하기 어렵더라. 우리 산업의 인적 자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기업이 일차적으로 타격을 받는데 빨리 알려야겠다 싶었다. 한국의 산업은 고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만큼 인적 자원이 중요하다. 의사보다 기초학문 하는 사람이 고연봉을 받고, 그들의 역량이 기업에 전달돼야 성장하게 되는데 어려운 현실이다.”
한옥도, IT도 결국 사람이 중요한 것 같다.
“맞다. 처음 목수들과 1년 넘게 새로운 방식을 놓고 기 싸움을 했다. 이 정도로 연구하고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설득하고 같이 연구하고 시간이 지나 진심이 통하니 사람들이 모이더라. 지금은 대목수 18명이 함께 일한다. 한옥을 다 지으면 제일 먼저 목수팀부터 초청해 잔치를 했다. 이제 ‘안 해 봤지만, 한번 해 봅시다’라고 하면 모두 흔쾌히 따라오고 아이디어를 앞다퉈 낸다. 그렇게 창호부터 가구·조명까지 전부 우리가 개발하고 제작한 걸 쓰게 됐다.”

인터뷰날도 그는 조명 테스트를 위해 현장에 왔다고 했다. 리조트 안 호수 정원에 설치할 대리석 조명으로,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쓰고 남은 나무를 모아 벽면 하나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살짝 그을린 한지를 유리에 끼워 벽에 설치하기도 한다. 지난해 리조트에서 연 아들 결혼식도 무대 디자인부터 꽃 장식까지 도맡아 했다. “일하느라 애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한 번도 못 갔는데, 그걸로 퉁치기로 했다”며 웃었다. 총지배인의 휴대전화 사진앨범 속 조 대표는 포클레인 삽에 올라타 한옥 높이를 재고 있거나, 실리콘을 가득 묻히고 무언가를 목수팀과 만들고 있었다. “인생의 모토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보자’다. 더 나이 들어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앞에 놓인 작은 것부터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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