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합창 125명, 연주 75명…이 오케스트라가 집착한 숫자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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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에 맞춰 200명, 작품번호 125에 맞춰 125명이다.”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이 8일 열리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무대의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했다. ‘합창’ 교향곡은 1824년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 극장에서 초연돼 올해로 200주년이다. 또 이 작품은 베토벤의 작품번호로 125번이다.
베토벤 '합창' 공연하는 고잉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조성현이 디렉터로 있는 ‘고잉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이 숫자에 맞춰 음악가들을 모았다. 합창단이 125명, 오케스트라 75명을 더해 꼭 200명이다.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조성현은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주된 정신인 ‘모든 사람’에 주목한다”고 했다.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서 따와 교향곡에 넣은 문구,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Alle Menschen werden Bruder)’에 대한 설명이다. 고잉홈은 작품의 이런 정신에 따라 한 합창단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사람이 모여 노래하는 무대를 계획하고 있다. “어린이나 학생을 비롯해 어려 곳에서 모인 ‘모든 이’가 무대에 서게될 것이다.”
고잉홈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조성현, 첼리스트 김두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프, 클라리넷 연주자 조인혁, 호른 연주자 김홍박 등이 주축이 돼 2022년 만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다. 모두 전세계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연주자들이다. 고잉홈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의 음악가들, 또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주자 등을 모아 ‘집으로 돌아온다’는 모토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휘자 없이 공연을 하며 모든 멤버가 자율성을 가지고 음악에 참여한다는 정신을 강조한다.
8일 무대는 고잉홈이 지난해 말부터 달려온 ‘베토벤 여정’의 종착지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베토벤의 교향곡 1ㆍ2ㆍ3번으로 시작해 올 여름 4~8번을 연주했다. 총 5번의 무대였다. 독특한 점은 베토벤의 모든 교향곡뿐 아니라 모든 서곡(12곡)을 연주했다는 것. 베토벤이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작곡했던 서로 다른 버전의 서곡들 뿐 아니라 ‘아테네의 폐허’ ‘명명축일 서곡’ 같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 서곡까지 모두 다뤘다. 8일 ‘합창’ 교향곡과, ‘합창’ 교향곡 아이디어의 씨앗이 들어있는 ‘합창 환상곡’까지 손열음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면서 베토벤 전곡 사이클을 마무리하게 된다.
왜 베토벤이었을까. 조성현은 “오케스트라를 시작했으므로, 언젠가는 꼭 해야했던 프로젝트가 베토벤”이라고 했다. “베토벤의 정신, 또 그의 교향악에 담긴 건축적인 설계가 우리 오케스트라에 시작점을 마련해줬다.”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첼리스트에게 바흐의 무반주 조곡 전곡(6곡)처럼 도전이고, 자신에 대한 점검이면서 발전의 계기가 오케스트라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이라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음악가들은 새로운 경지를 만난다. 고잉홈의 음악가들은 베토벤이 추구한 음악의 절대적 힘과 투쟁의 정신이 오케스트라를 성장시켰다고 했다. 손열음은 “악단이 인격체로 자리잡는, 걸음마 같은 과정에서 베토벤이 아니었다면 음악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만큼 큰 힘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고잉홈 오케스트라가 몇십년, 몇백년 갈 수 있다면 모두 베토벤의 공로다”라고 덧붙였다.
고잉홈은 지휘자 없이 연주하기 때문에 단원들 사이의 균형과 조합이 큰 숙제다. 클라리넷 수석인 조인혁은 이런 과제가 이번 베토벤 사이클을 통해 해결돼가고 있다고 봤다. “모든 연주자가 하나의 유기적인 앙상블을 해야 하는데 참 어려웠다. 그런데 베토벤 전곡을 일년 내내 하고 나니 음악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의 음악을 능숙하게 만들고 있었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조성현 또한 “음악적으로 채워지지 못했던 부분이 채워졌다”고 했다.
상설 악단이 아닌만큼 베토벤의 전곡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사실 이 악단은 멤버들이 그저 좋아서 하는 오케스트라다. 연중 내내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모일 수 있을 때 집중적으로 연습했다.”(조성현) 이들은 하루 6시간씩 일주일 내내 연습했고, 무대 공연 자체도 이틀(7월 12일과 14일) 혹은 사흘(8월 13일과 16일) 차이로 조밀하게 열렸다. 조성현은 “프로 오케스트라라면 단원들이 들고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연습량과 강행군”이라고 했다. 일정한 연습 장소가 없어 늘 ‘메뚜기’처럼 연습실을 옮겨다니며 이룬 성취다.
신개념 오케스트라의 자발적 도전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좋다. 8일 공연의 티켓은 10월 판매를 시작하고 곧 매진됐다. 조성현은 “그동안 쌓아온 것에 대해 청중이 공감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베토벤 전곡 연주로 고유의 소리를 만들어 나간 고잉홈 오케스트라는 내년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에 집중한다. 작곡가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라벨의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을 시작으로 교향곡 3회, 실내악 2회의 라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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