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5년간 간식비 아껴 매년 기부”…나눔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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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못 넘기고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그때 생명줄이 내려왔어요.”
송방남(75·서울 강서구)씨는 장폐색으로 사경을 헤맸던 20대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며 어린 두 아이를 기르던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송 씨는 “장이 붙어버리는 바람에 몇달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이렇게 죽는가 보다 했다”라며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고, 나이가 젊다 보니 도움 청할 곳도 달리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삶의 희망을 잃어가던 때 그는 대한적십자사의 긴급의료지원을 받게 됐고, 몇 주간의 병원 치료 끝에 건강을 되찾았다. 인생의 고비에 받은 도움을 평생 잊지 않았고 언젠가 갚겠다고 생각했다. 15년 전 환갑을 앞두고 자녀들이 돈을 모아 잔치를 계획하자 송 씨는 “잔치를 여는 대신 적십자사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자녀들이 처음부터 송 씨의 기부를 반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송 씨는 “옛날의 나처럼 아파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굽히지 않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적십자사에 기부금을 전달해왔다.
송 씨는 “미용실 두 번 갈 걸 한 번만 가고, 간식 생각날 때 참으며 돈을 모았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알뜰살뜰 모은 돈을 해마다 적십자에 보냈고 15년간 총 953만8350원을 기부했다. 수혜자에서 기부자가 된 송 씨는 “큰돈을 기부하는 훌륭한 분이 많은데 제가 조명을 받아 부끄럽다”라면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전에 사는 이홍규(59)씨는 적십자사 재난대응 봉사회에서 봉사원으로 활동하다 기부자가 됐다. 그는 2001년부터 각종 사고, 자연재해 현장에 출동해 이재민을 도왔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이 씨는 봉사활동을 계기로 응급처치 강사가 됐다. 그는 “재난 현장 출동을 위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꾸준히 받았는데,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빨리 가르쳐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08년부터 응급처치 강의를 하고 받은 강사료를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한텐 없어도 되는 부수입인데 적십자사에 기부하면 귀하게 쓰일 거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퇴근 뒤나 주말에 가끔 강의해 한 달 10만원 안팎을 기부했다. 그러다 은퇴 이후 강사로 본격 활동하며 기부 금액을 점차 늘려갔다. 지금까지 이씨가 나눈 기부금은 1744만257원에 달한다. 그는 “자랑할 만큼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라며 “제가 기부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 보인다’며 기부에 동참하는 주변 친구들이 생겨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회적 약자와 재난을 당한 이들을 위해 매년 12월부터 적십자회비를 집중 모금을 한다. 적십자 특별회비는 지로용지(금액 지정) 기부방식이 아니라 송씨와 이씨처럼 기부자가 기부액을 결정해 자유롭게 내는 적십자회비다.
고통받는 이재민과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적십자회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금캠페인이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적 국민 성금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과 간호인력 양성을 위한 대한적십자회 모금 활동에서 시작됐다.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생하던 해외동포들이 월급을 쪼개어 전달한 성금은 우리나라 첫 해외 모금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전상자 구호와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 국민들이 뜻을 모아 십시일반 참여했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모인 적십자회비는 생명을 살리는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의 근간이 된다. 2024년도 적십자회비 모금액 407억원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 국내외에서 발생한 재난·사고·무력충돌 등으로 인한 이재민 구호, 청소년적십자 활동을 통한 미래세대 육성 재난심리지원 및 안전교육 등에 사용됐다. 올해 11월 기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인도적 지원을 받은 위기가정과 사회적 약자는 43만명이다. 국내외 재난취약계층과 이재민은 116만명에 달한다. 2025년도 적십자회비 모금 목표액은 360억원으로 전국 17개 광역 시도에서 모금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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