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계엄 위기가 ‘밸류업 시험대’…월가 전문가들이 본 K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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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이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에는 좀처럼 외국인 투자자 자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공들여온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도 동력이 떨어진 모양새다. 나라밖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내년부터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고, 다음달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들도 변수다.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한국 시장에 특별한 관심을 지닌 한국계 글로벌 투자 전문가의 대담을 준비했다. 뉴욕 월가에서 활동하는 제이윤(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 회장과 홍콩 금융계가 주 무대인 피터김(김신) KB증권 글로벌세일즈총괄담당 전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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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윤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 회장(왼쪽)과 피터김 KB증권 전무가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한국 증시와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두 전문가는 최근 계엄령 사태와 탄핵 정국을 이유로 한국 정치 전체를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터김 전무는 “오히려 한국 정치권과 국민이 이번 사태를 신속하게 진정시킨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림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김 전무는 “위기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결단력이 발휘되면서 밸류업 기조가 더욱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긍정론을 폈다. 제이윤 회장 역시 “오랜 경험상 한국인은 위기의 순간 더 강해진다는 믿음이 있다”며 “만약 원-달러 환율이 1475원 이상이 되고, 증시가 추가로 더 빠지는 등 더 안 좋은 지표가 나온다면 개인적으로 공포에 질리기보다 오히려 망설임없이 한국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은행의 개입으로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증시는 호황을 이어가겠지만, 수혜를 받을 종목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김 전무는 “트럼프의 규제 완화는 미국 대기업들, 특히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윤 회장은 “미국 빅테크는 수익 구조는 확실하지만 너무 비싸고, 오히려 트럼프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소형주에서 더 성장 가능성이 크고, 잠재력을 가진 기업들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의 탄핵 정국을 해외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제이윤: 계엄 사태로 해외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직까지는 해외에서 이번 사건을 단기적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더 신중한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고, 한국 시장의 장기적 매력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피터김: 해외의 많은 전문가는 이번 사건이 정치적 조율 및 전략 부재를 드러냈으며,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이번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라기보다 ‘별개의 사고(isolated incident)’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엄령 결정은 소수 인사가 충동적으로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민이 40여 년 전 어렵게 얻어낸 민주주의 근본은 변함없이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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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윤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 회장(왼쪽)과 피터김 KB증권 전무가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한국 증시와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한국 경제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피터김: 한국이 레임덕 상태에서 대내외 신뢰를 잃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상황으로 빠져들 것인지, 아니면 위기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결단력을 발휘해 밸류업 프로그램 같은 개혁 조치들을 실행할지 중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밸류업 정책 대부분은 국회의 승인 없이도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야의 권력 다툼으로 이런 개혁들이 뒤로 밀려날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 정치인들이 국가 이익을 우선시할지 당파적 이익을 추구할지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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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윤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 회장(왼쪽)과 피터김 KB증권 전무가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한국 증시와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 증시의 매력이 있다면.  

피터김: 자산 배분 관점에서 여전히 미국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자산의 100%를 미국에만 둘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밸류업 노력과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전통적인 수출 주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이나 기업의 내부 개혁을 이루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한국 투자자들께 두 가지 전략을 추천하고 싶다. 첫째, 내부 구조조정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섹터(산업)나 기업을 찾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사이클이나 수출, 글로벌 브랜드와 관련해서는 미국 산업이나 기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제이윤: 한국 시장은 각 산업의 사이클이 뚜렷하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투자하려면 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가격이) 더 저렴해지거나, 더 혁신적인 변화를 보여야 한다. 만약 내가 한국 정부라면, 더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내려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이 언제 더 떨어지는지, 오직 할인 폭이 클 때만 관심을 갖게 될 거다.

내년에도 미국은 ‘나홀로 활황’일까.

피터김: 세계 경기 둔화 속에 미국 경제만 좋아지는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는 여전히 유효하다. 트럼프의 관세 협상으로 미국은 유리한 위치를 점할 거다. 관세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지만 달러 강세가 이를 완화시킬 수 있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미국 시장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규제 완화는 미국 대기업들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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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제이윤: 앞으로 1~2년 동안 미국 경제 전망은 밝지만, 미국 주식은 이미 이런 기대를 반영하고 있어 가치 평가 면에서 부담스럽다. 미국 주식을 보유하고 싶다면, 현재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올해 중반부터 대형주에서 중·소형주로 포트폴리오를 이동했다. 특히 이번 미국 대선에서 주요 기술기업들은 큰 수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세대 중소형 기술 리더들이 주목받고 있고,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는 고점 논란이 나오는데.  

피터김: 우리는 성장의 희소성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률이 감소 추세이며, 이는 성장주 프리미엄을 높인다. 엔비디아는 이미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다. 단기적으로 비싸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유해야 할 주식이다. 인공지능(AI)은 사회 전체를 바꾸는 기술이라서 지금을 사이클 정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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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제이윤: 성장의 희소성이 성장 프리미엄을 높인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이 프리미엄은 엔비디아 같은 개별 주식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 적용되는 얘기다. 엔비디아가 성장률 30%를 유지한다 해도 현재 개별 주가는 너무 비싸다.

내년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전망하나.  

피터김: 개인적으로는 내년 말쯤 주기적 요인으로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구조적으로는 메모리 칩에서 AI 프로세서 칩으로의 전환이 중요한 변화다. 이 전환은 기업 간 격차를 크게 벌릴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서 나갔지만, 다음 단계에서도 우위를 점할지는 불확실하다.

제이윤: 반도체 경기와 글로벌 경기가 향후 6개월 이내에 저점을 찍고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회복 시 먼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원화 가치는 크게 하락(환율 상승)했고 코스피 변동성도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시장을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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