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8.3%→1.5%' 한국 수출 곡소리…내년엔 떨어질 일만 남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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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부산항 신선대·감만·신감만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인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수출은 8.3%(1~11월 기준) 증가했지만, 내년엔 수출 증가율이1%대로 주저 앉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반도체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미국·중국에 치우친 수출 전략의 구조적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중앙일보가 5개 기관(무역협회·산업연구원·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금융연구원)의 2025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 평균을 낸 결과 1.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부정적으로 본 전망치는 0.4%(금융연)였고, 가장 높은 전망치도 2.2%(산업연구원)로 올해의 4분의 1 수준이다. 5개 기관의 내년 수출액 전망치 평균(6987억달러)로, 올해 정부의 목표치(7000억달러)를 내년에도 못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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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수출 효자 반도체 먹구름

내년 수출 전망이 어두워진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다. 올해 반도체 수출은 역대 최고치인 1390억 달러(반도체협회 추정)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의 20% 가량을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을 제외하면 올해 11월까지의 수출 증가율(8.3%)은 1.6%로 뚝 떨어진다. 그만큼 반도체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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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그런데 내년엔 사정이 달라진다.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양쯔메모리(YMTC)가 구형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직접 경쟁하는 관계로 돌변했다. 한국 메모리를 수입해 쓰던 중국 전자업계가 중국산 메모리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실적발표에서 “중국 메모리업체의 구형 제품 공급 증가로 실적이 하락했다”는 이례적인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출길이 막히는 등 미국의 대중 제재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협회는 내년도 반도체 수출액이 2.9%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중 갈등으로 그동안 반도체 수출이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착시효과도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위치한 각사 공장에서 만든 메모리 칩을 한국으로 들여와 재가공해 해외로 재수출 하는 물량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무관세 적용이 원칙이지만, 2017년 미중 무역 전쟁 이후 양국은 반도체에 상계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산 반도체칩을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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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또 미국의 제재로 중국 공장에 최첨단 기기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도입할 수 없어 한국에서 마무리 공정을 해야 하는 사정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국 공장을 거쳐 가기에 수출로 잡히지만, 반도체 기업의 실제 판매량이 더 늘지는 않는다. 한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2015년 55억 달러에서 꾸준히 늘어 2022년에는 185억달러에 달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메모리 강국 한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메모리칩 물량은 모두 무역전쟁으로 인한 것이라,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라고 말했다.

주력 수출국 1·2위도 감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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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올해 한국의 수출 1위국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던 중국·미국 수출 실적도 이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1212억달러, 대미 수출액은 1159억달러로 전체 수출(6224억달러)의 38%를 두 나라에서 올렸다. 그러나 지난 1월 16.2%, 27.2%에 달했던 중국·미국 수출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점점 하락하더니 11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0.7%, 5.2% 줄었다.

중국은 IT 수요 증가세가 꺾이고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던 한국 기업들의 설 자리가 줄고 있다. 송민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내수 침체로 자체 수요도 부진한데, 중국 기업들이 과잉생산하고 있어 한국산 중간재 수요가 부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적자 행진 중인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미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적 관세 부과 정책이 자동차 대미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전체 수출에 강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연구원은 “대미 수출은 관세에 따라 약 8.4% 감소가 예상되며, 보편관세 20%를 부과할 경우에는 최대 14%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황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 수출의 구조적 특성은 품목에서는 반도체, 시장에선 미·중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에 이들이 흔들리면 수출 감소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품목과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의존도를 낮춰 가야하지만 단기간 해결이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에 더 악영향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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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수출이 부진해지면 한국 경제 전반이 성장 동력을 잃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상현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3%(3분기 기준) 중 순수출이 기여한 비율을 따져보면 2.3%포인트, 내수는 -0.1%포인트로 계산된다”라며 “한국 경제를 수출이 강하게 견인했는데 내년에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면 경제 성장의 동력이 크게 꺼질 우려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산업 경기도 이미 얼어붙고 있다. 22일 산업연구원의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의 12월 업황 현황(PSI, Professional Survey Index)는 81을 나타냈다. 수치가 100보다 아래면 업황이 전월보다 악화했다는 뜻이다. 업종별로 보면 조선(100)을 제외한 반도체·디스플레이·전자·자동차·조선·기계·화학·철강·섬유·바이오헬스 등 9개 업종이 전부 100을 하회했다. 특히 반도체(82)는 지난해 6월(125)부터 이어져온 1년6개월간의 개선세를 마감했다.

탄핵 정국으로 인한 불확실성도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탄핵이 경제 전반과 내수에 마이너스 요인인 건 분명하다”라며 “수출 경기가 경착륙하고 내수 부양도 실패하면 ‘L자형 장기 불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겠지만 해외 고객에 불안감과 신뢰 하락을 줄 것이기에 탄핵 정국은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내년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정말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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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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