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운동 뒤 마시는 술이 더 꿀맛?…위험한 TV 속 '음주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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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tvN 드라마 ‘졸업’은 주인공이 음주운전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여자 주인공이 술을 따라 마신 뒤에 직접 차를 몰아 남자 주인공을 집에 데려다주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 항의가 잇따랐다. 드라마는 15세 이상 청소년도 볼 수 있는 등급인데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해 청소년 역할이 다수 등장했다. 방송사는 다시보기 서비스와 재방송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삭제했다.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정려원은 언론에 “모두가 놓친 부분이라 생각했다.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 꼼꼼히 확인하고 집중해야겠다, 다시 한 번 모두가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MBC 예능 ‘나혼자 산다’는 음주를 미화하는 방송을 수차례 내보냈다가 지난달 1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법정 제재인 ‘주의’를 받았다. 시청자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심의에 나선 것이다. 방심위는 나혼자 산다 측이 15세 관람가 방송에서 음주를 미화하고 술이 피로회복제인양 표현한 점을 문제삼았다. 개그우먼 박나래가 복분자주와 음료를 섞은 ‘노동주’를 만들어 마시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방송(지난해 7월), 그룹 트와이스 멤버 지효가 술 마시는 장면에 ‘운동 후에 마시니까 더 꿀맛’ ‘깔끔한 맛이 일품인 깡소주’ 등의 자막을 넣은 방송(지난해 8월)등이 문제가 됐다.
23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최근 3년(2021~2023년) TV 시청률 상위 10개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한 편당 음주 장면 송출 횟수는 평균 1.1회로 나타났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인기 드라마·예능의 음주 장면은 한 편당 3.7회로 조사됐다. 유튜브 음주 콘텐트 조회수 상위 100개에서 미성년자 음주 조장 등 문제 장면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건강증진개발원은 ‘졸업’과 ‘나혼자 산다’ 사례를 들며 “시청자의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미디어의 음주 장면 송출을 감소시킨다”라고 밝혔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무분별한 음주 콘텐트 노출 위험이 커졌다. 정부는 지난 2017년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난해 한차례 개정했다. 하지만 자율 규제이다보니 이를 따르는 제작자가 별로 없다. 유튜브의 경우 과도한 음주콘텐트에 어린이ㆍ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OTT는 지난해 5월부터 자체적으로 연령등급을 설정할 수 있게 되면서 규제가 더욱 느슨해졌다. 지난해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음주 장면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8.9%에 달했다. 음주 콘텐트의 범람은 미성년자의 음주·폭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미디어 음주장면 노출은 시청자,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을 술로 이끌기 쉽다. 미국 소아과학회에 따르면 청소년의 음주장면 노출 빈도가 1000번 늘어나면 이들이 음주를 시작할 가능성은 5% 높아지고, 폭음 위험은 13%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음주 장면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술은 담배처럼 1군 발암물질인데, 우리사회는 유독 술에 관대하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담배를 미화하지 않듯, 술을 미화하지 않도록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가야 한다”라며 “미디어 수용자인 국민들의 비판적 수용태도와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어린이·청소년에 음주 장면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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