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볼 여왕’에서 ‘3쿠션 여제’로 발돋움한 김가영. 여자프로당구(LPBA) 최초로 5개 대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새 역사를 썼다. 전민규 기자

우승, 우승, 우승, 우승, 또 우승. 올해 여자프로당구(LPBA)는 가히 김가영(41) 천하라 부를 만하다. 적수가 없다는 표현이 식상할 정도로 LPBA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김가영은 지난 8일 끝난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김보미(26)를 세트스코어 4-2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지난 8월 베트남 하노이 오픈 64강전 승리를 시작으로 이번 결승전까지 30연승을 달렸다. 게다가 최근 5개 대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도 세웠다. LPBA는 물론 남자프로당구(PBA)에도 전무한 신기록이다. 최근 경기 고양시의 개인 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속으로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 10대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내게 더 없는 보상이 주어진 느낌”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 당구의 ‘얼굴’인 김가영의 성장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당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큐(cue·당구봉)를 잡았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포켓볼 선수로 활약했다. 성인이 된 2001년에는 포켓볼 강국인 대만으로 건너가 선진 당구를 익혔다. 세 차례 세계선수권(2004·2006·2012년) 우승 등 전 세계 여자 선수 최초로 포켓볼 4대 메이저대회를 제패해 ‘포켓볼 여왕’ 칭호도 얻었다.

한때 ‘소마녀’(작은 마녀, 대만에서 붙은 별명)라고 불릴 정도로 집요하게 포켓볼 한 우물만 팠던 김가영은 2019년 돌연 3쿠션으로 전향했다. 더 이룰 목표가 없는 포켓볼을 떠나 시장이 더 넓은 3쿠션 선수가 되기로 한 것이다.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3쿠션과 포켓볼은 차이가 큰 데다, 30대 후반 나이를 고려할 때 “전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신재민 기자

김가영은 “나라고 왜 걱정이 없었겠나. 포켓볼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 ‘차라리 백지상태였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며 “피나는 연습, 그리고 포켓볼 선수 김가영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과거 영광은 잊고 1년 정도 매일같이 3쿠션을 치니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그간의 노력이 이번 5연속 우승이란 열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여느 챔피언처럼 김가영도 자신을 매번 다그치고 자신과 혹독한 싸움을 펼쳐나간다. 대회에서 우승해도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바로 연습장을 찾아 실수를 복기한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큰데, 취미를 통해 이를 풀곤 한다. 요새의 관심사는 프리다이빙(공기통 없이 하는 무호흡 잠수 활동)이다. 그는 “물속에 들어가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경쟁이 없는 나만의 운동이라 스트레스가 없다”며 웃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다시 큐를 매만지던 김가영은 “여전히 당구가 재밌다. 당점(공에서 큐가 닿는 부분)이 반의반 팁(공에 닿는 큐의 끝부분)만 차이가 나도 공의 궤적은 정말 많이 바뀐다. 이 연습만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3쿠션 전향 후) 5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이 사이 PBA와 LPBA 모두 자리를 잘 잡았다. 하지만 아직 여자 선수 처우는 (남자의) 100%라고 할 수 없다. 상금은 남자 대회 절반도 안 된다.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현실화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베테랑답게 제언한 뒤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