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흔드는 머스크 '비선 파워'…트럼프와 브로맨스 언제까지 [정…
-
3회 연결
본문
지난 10월 1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유세장.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연설 도중 중 느닷없는 얘기를 꺼냈다.
“수소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이 폭발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거다. 수소차가 폭발하면 여러분이 누구인지 식별조차 불가능하다.”
어떤 정치적 맥락도 없이 불쑥 나온 수소차 비판. 그러나 이 뜬금없는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키’는 있었다.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대선 기간에 약 4000억원을 트럼프 후보에게 ‘올인’하며 순식간에 최측근으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전기차 사업을 하는 머스크 입장에선 가장 불편한 경쟁자가 수소차일 수 있다. 실제 미국 내 많은 자동차 업체들은 저 뜬금없는 수소차 비판의 배후로 머스크를 의심하고 있다.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업계 입장에선 차기 정권과 손잡은 머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계 들쑤신 ‘머스크 파워’
머스크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 정가를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이름이다. 그의 위상과 관련한 논란은 최근 미 의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더 도드라졌다. 임시 예산안 처리 시한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공화당과 민주당은 내년 3월 14일까지를 기한으로 하는 추가 임시예산안(CR)에 합의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반기를 들었다. 정부의 부채한도 폐지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 ‘셧다운’이 닥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배신”이라며 양당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이에 앞서 이른바 ‘빌드 업’ 과정이 있었다. 머스크는 트럼프보다 한발 앞서 임시예산안 합의에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 의회를 압박했다. 그는 X(옛 트위터)에 150건 넘는 글을 올리며 예산안에 합의한 공화당 의원들을 비난했다. “이 터무니없는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의원이 있다면 2년 내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등의 내용이었다.
결국 머스크는 공화당 내부를 흔드는 데 성공했다. 다수 의원이 머스크의 반대 입장을 지지하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당 지도부는 끝내 부채한도 유예를 포함한 수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수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부채한도를 더 늘리는 방안은 내년으로 넘기기로 하면서 정부 셧다운은 가까스로 피하게 됐다. 셧다운 위기로 이번 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취임 이후 예산안부터는 부채한도 증액 부문을 명확히 한 셈이다.
‘비공식 대통령’으로 불리는 ‘비선 파워’
예산안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에서 입증된 것은 ‘비공식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머스크의 ‘비선 파워’였다. 막강한 영향력을 재차 입증한 머스크를 향해 공화당 내에선 “하원의장으로 추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원 규정상 의원이 아니더라도 의장을 맡을 수 있다. 강성 트럼프 지지자인 공화당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은 “기성 정치 제제는 산산조각이 나야 한다”며 “의장 후보로 머스크를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에선 “머스크가 대통령이냐”는 반발이 쏟아졌다. 민주당 짐 맥거번 하원의원(매사추세츠)은 “(머스크는) 대통령이고, 트럼프는 이제 부통령”이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자본 권력’으로 쟁취한 ‘정치 권력’
AP통신은 “분명한 것은 ‘정치권력 머스크’의 부상”이라며 “이런 수준의 영향력은 그의 막대한 부로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머스크는 대선 기간에 트럼프 측에 2억7400만 달러(약 4000억원)를 쏟아부었다.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다가섰고, 대선 캠페인에도 직접 뛰어들면서 최측근을 꿰찼다. 당선 직후 정권 인수팀이 꾸려지자 아무런 직책도 없는 그가 회의에 참석했고, 정부 인선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아예 그를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정부 예산 집행을 효율화한다는 명분으로 머스크가 대규모 공무원 감원에 나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공직에까지 관여하는 그가 테슬라 CEO라는 점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가 자신의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에 개입한다면, 이해충돌 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 머스크의 개입으로 예산안을 새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미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빠졌다. 민주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델라웨어)은 CNN과 인터뷰에서 “테슬라는 상하이에 대규모 공장이 있기 때문에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머스크 ‘브로맨스’ 언제까지?
그렇지만 현재까지 머스크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린다는 조짐은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측근을 인용해 “트럼프와 그의 가장 부유한 지지자(머스크) 사이에 어떤 종류의 균열도 없다”고 전했다. NYT는 “트럼프는 재산을 지성과 동일시하는 인물이어서 둘의 관계는 꽤 오래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실제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머스크의 재산(4510억 달러)은 트럼프(66억 달러)보다 약 70배 더 많다.
트럼프는 최근 머스크의 정치적 영향력이 논란이 되자 “그가 대통령직을 가져가는 게 아니다”며 “난 똑똑한 사람을 두는 걸 좋아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을 장기간 곁에 두지 않는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견해다.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선거 기간에 돈과 권력을 교환한 일시적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밀월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미 시사지 더네이션의 발행인인 카트리나 반덴휴벨은 최근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두 나르시시스트 사이의 허니문이 얼마나 오래갈지 회의적”이라며 “이들의 관계는 (대선을 위해 일시적으로 뭉친) 트럼프 동맹과 마찬가지로 매우 위험하고 취약하다”고 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