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식품 사막’ 시골에 트럭 편의점…“영양실조 걱정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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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장터 차량이 마을회관 앞에 나와 있으니 주민들께서는 나오셔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2시쯤 전북 진안군 진안읍 평촌마을. 확성기에서 최인석(57) 이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마을회관 앞에 멈춘 트럭 주변에 주민 20여명이 모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허리가 구부정한 주민들은 한 사람씩 난간이 달린 계단을 따라 트럭에 올랐다. 이들은 냉장고와 상품 진열대를 갖춘 ‘이동형 편의점(장터)’에서 라면·우유·과일·돼지고기 등 식료품과 화장지 같은 생필품을 고르느라 분주했다.
성옹림(84) 할머니는 부탄가스를 집은 뒤 손에 쥔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주뻘인 20대 계산원에게 건넸다. 성 할머니는 “진안은 4일과 9일이 장날인데 시장까지 7~8㎞ 떨어진 데다 버스도 1~2시간마다 한 대씩 다녀 혼자 사는 늙은이가 장을 보러 다니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겨울엔 춥고 길이 미끄러워 제때 먹거리를 못 구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했다.
진안군에 따르면 평촌마을 실거주자 약 70명 중 65세 이상이 70% 이상으로 대부분 독거노인이다. 그러나 평균 연령 80세인 평촌마을은 구멍가게조차 없어 이른바 ‘식품 사막(food desert)’으로 불린다. 식품 사막은 1990년대 초 영국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도입된 용어로, 식료품점이 사라지면서 식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지역을 말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6일 “전북 지역의 ‘식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편의점 CU 등과 손잡고 ‘내 집 앞 이동장터’를 시범 운영했다”고 밝혔다. 3.5t 트럭을 개조해 만든 일종의 ‘푸드 트럭’이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2일까지 매주 목요일 진안(상가막·평촌)과 임실(학암·금동)의 4개 마을을 돌았다. 판매 품목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전 조사를 거쳐 정했다.
주민들은 70여 종의 생필품이 가득 찬 이동장터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것처럼 반겼다. 최 이장은 “시골 어르신에게 장보기는 건강·수명과 직결되는 생존 문제”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최소 열흘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마을을 찾는 ‘이동 점방(店房)’을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전북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농어촌 마을 10개 중 7개 이상이 ‘식품 사막’으로 분류된다. 2020년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 결과 전국 3만7563개 행정리 중 2만7609개(73.5%) 행정리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북 83.6%, 전남 83.3%, 세종 81.6% 순이다. 소매점이 사라지면 생활 불편을 넘어 주민 영양 불균형과 만성 질환 유발,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게 전북연구원의 설명이다.
이에 식약처는 교통·장보기 약자를 위해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기존엔 포장육 등 축산물을 정육점·마트 등 해당 점포에서만 팔 수 있었지만,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한 개정안엔 냉장·냉동시설이 설치된 이동형 점포(차량)에서도 축산물을 진열·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김종훈 전북도 경제부지사는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CU 측과 사업을 확대하거나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는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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