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자신들이 만든 공수처, 이젠 없애자는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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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친명계 내부에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내 민주당이 매달린 검찰개혁의 상징적 결과물을 4년 만에 내다 버리자는 것이다.
친명 핵심 의원은 8일 중앙일보와 만나 “공수처는 다음 정권에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수처의 무능은 문재인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한 검찰개혁의 후과”라며 “정권이 바뀌면 다른 조직으로 흡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율사 출신 친명계 의원도 “정권이 바뀌면 공수처 존폐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조직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일단 공수처 내부자들의 얘기부터 청취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폐지론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실패하자 분출한 친명계의 분노에서 비롯됐다. 4일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공수처는 자신 없으면 당장에라도 경찰에 사건을 재이첩하라”고 비난했고,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7일 전체회의에서 “체포영장 집행 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며 오동운 공수처장을 질타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인사는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선고 전에 조기 대선을 치르기를 바라는 입장에선 공수처의 헛발질에 조바심이 날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설립했던 기관이니, 공수처란 조직의 실패를 친명계가 책임질 일은 없다는 것”이라며 말했다.
친명계 지도부는 2023년 발생한 순직해병 사건 때부터 공수처를 “내놓은 자식”(민주당 관계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공수처가 한창 수사를 진행하던 중인 지난해 5월 민주당은 사실상 공수처를 ‘패싱’하는 순직해병 특검법을 처리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거부권)에도 세 차례 더 특검법을 발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일방 통과시키면서 수사권만 부여했고 지금 와서 기소권이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이런 논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순직 해병 사건은 검찰을 믿지 못해서 공수처에 고발했는데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특검법을 발의한 것”(유상범)이라고 반발했다.
이런 민주당의 변침을 두고 정치권에선 “폐기론을 꺼내기 앞서 막가파로 공수처를 설치했던 과거 행동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금태섭 전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20대 국회 막판인 2019년 4월 공수처설치법안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법안)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과 극한 대치를 벌였다.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사라졌던 몸싸움이 벌어졌고, 국회 의안과 문을 부수는 과정에서 등장한 ‘빠루’(노루발못뽑이)는 당시 아수라장 국회의 상징처럼 기억되고 있다. ‘동물 국회’란 비난을 샀던 이 무력 충돌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만 당시 현역 의원 28명 포함 37명이다.
이후 민주당은 같은해 12월 30일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의 표결 불참 속에 공수처 설치법을 처리했다. 당시 재적 의원 176명 중 15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해찬 대표 체제는 당내에서 유일한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을 “당론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징계하기도 했다. 금 전 의원은 통화에서 “공수처란 조직의 무용성에 대해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민주당이 졸속 도입에 대한 반성 없이 저러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이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정의당 등 소수 정당이 원하던 선거제 개편을 찬성하는 바람에 “국회의원도 잘 모르는 복잡한 제도”로 불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공수처는 2021년 설립 이래 줄곧 ‘수사력 부족’ 논란에 시달렸다. 연평균 200억원대 예산을 써왔지만. 지금껏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사건은 총 5건에 불과하다. 이 중 유일하게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손준성 검사장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도 지난달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이는 공수처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현재 공수처의 수사 인력은 검사 15명, 수사관 36명에 불과하다. 범죄를 인지하는 범죄정보 수집 기능도 없고, 기소권의 구멍도 크다. 공수처는 판사·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만 기소할 수 있다. 대통령·장관·국회의원 등에 대해선 수사는 할 수는 있지만 기소할 순 없다. 이윤제 명지대 교수(형법)는 “설립 이후 이런 한계들이 법령에서 정비가 안 된 채로 갑자기 너무 큰 사건을 맡게 돼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설치법 통과를 주도했던 민주당 중진 의원은 “공수처가 2차 체포 시도하는 만큼 지금은 공수처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며 “공수처의 문제는 숙련이 덜 돼 생긴 것이어서 지금은 오히려 수사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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