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첩 해달라" 재촉하더니…공수처, 이상민 수사 손도 못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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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찰‧경찰로부터 이첩받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죄 수사를 23일째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8일 파악됐다. 검‧경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3주가 지났지만 이 전 장관의 소환조사 일정조차 잡지 않은 것이다.
공수처가 이 전 장관의 내란죄 사건을 넘겨받은 건 지난달 16일(경찰), 18일(검찰)이다. 당시 공수처는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해 공수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제24조 1항을 근거로 들어 이첩을 촉구했다.
공수처는 검‧경이 1차 이첩 요구(지난달 8일)에 응하지 않자 재차 이첩 요구(지난달 13일)를 하는 등 내란 사건 수사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기 위해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를 지난달 18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공수처는 이첩요청권을 발동하면서 이첩요청권 행사 여부를 심의할 수 있는 ‘이첩요청권 심의위원회’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내란죄 사건이 공수처로 모였지만 정작 이첩이 완료된 이후 두 수사는 모두 답보 상태다. 윤 대통령 사건은 지난 3일 경호처와 5시간 30여분의 대치를 끝으로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했고, 지난 6일에는 체포영장 만료를 하루 앞두고 경찰에 ‘지휘 공문’을 보내 윤 대통령 체포를 떠넘기려다 공조수사본부 체계에 균열이 생길 뻔했다. 윤 대통령 사건의 수사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이 지난달 16일 경찰에 피의자로 출석해 진술한 내용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이 전 장관 사건에 손을 놓으면 계엄 사태의 재구성과 실체 규명에 구멍이 생길 거란 우려가 나온다. 검‧경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이상 이 전 장관의 내란죄 수사는 오직 공수처만 할 수 있어서다. 심지어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동조했다는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이다. 윤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기도 하다. 또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계엄 직후인 지난 4일엔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회동했다. 계엄 선포 전후 조지호 경찰청장 등과 경력 배치를 논의했다는 의혹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수처의 인력‧경험 부족으로 인한 수사 공백 우려는 처음부터 예견됐다”는 말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인력도 경험도 부족한 공수처가 검‧경에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서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 수사를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란 사건에서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무리한 것 같다. 검찰은 주요 피의자들을 모두 구속기소했는데,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구멍이 생기게 됐다”고 우려했다. 검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을 지난달 27일 재판에 넘겼고, 여인형‧이진우‧박안수‧곽종근 등 군 수뇌부에 대한 기소도 마친 상태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인력 부족으로 수사를 동시에 할 수 없다면 공수처의 당면 과제는 윤 대통령 체포가 맞다”며 “윤 대통령 체포에 실패하면 공수처는 내란 수사 자체에 대한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금은 윤 대통령 사건에 공수처 전 인력을 투입해 올인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윤 대통령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시작할 것”이라며 “이 전 장관 사건도 차질 없이 수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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