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추억팔이 안 통했다…철지난 라디오 쌓인 '아이와'의 최후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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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폐막을 하루 앞둔 9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경연장 한 구석에 철지난 카세트 플레이어와 주방기기가 전시돼 있었다.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라디오 등 아날로그 음향기기로 명성을 떨치던 ‘아이와’의 전시 부스다. 대세로 굳어진 AI 물결을 의식한듯 부스 입구에는 ‘아이와 인텔리전스’라는 문구를 붙여 두었지만 출품한 제품들은 믹서기·커피포트 등 평범한 주방 가전들이었다. 그나마 한 쪽 벽면을 채운 휴대용 플레이어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산한 부스를 굳이 찾아 들어온 관람객 대부분은 “내가 알던 그 아이와가 맞느냐”고 했다.
아이와는 1951년 일본에서 창업한 전자 기업이다. 1980년대 아이와의 카세트 플레이어 제품들은 음질에서 소니워크맨을 압도하는 등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다. 이들 제품들은 지금도 일부 애호가 사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전자산업은 디지털 시대로 넘어갔지만 아이와는 그동안의 명성과 관성에 기대어 아날로그 기기 개발에 집착했다. 그렇게 내리막이 시작됐다.
파산 위기에 처한 2002년 아이와는 일본 소니에 합병된다. 소니는 아이와의 브랜드 파워를 고려해 상표는 살려 두기로 했지만 이후에도 혁신은 없었다. 소니도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침몰 중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소니는 아이와를 저가 브랜드로 활용했지만 판매량은 갈수록 추락했다. 결국 소니는 2008년 아이와를 포기한다.
2017년 일본의 중견 전자업체 토와다오디오가 소니로부터 아이와 브랜드를 사들여 부활에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 아이와의 높은 인지도를 노리고 미국·인도·남미 등에서 현지 회사들이 아이와 상표권을 차지해 난립하면서 각국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영세한 전자업체가 만든 조악한 제품에 아이와 브랜드만 붙여서 파는 형태였다. 한때 삼성전자·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대 가전회사로 불렸던 대우전자와 유사한 최후를 맞은 셈이다. 올해 CES에 등장한 아이와 부스 역시 미국의 한 중소기업이 북미지역에서의 브랜드 사용권을 사들여 출품한 것이었다.
반면 같은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한때 아이와를 소유했던 소니의 거대하고 화려한 부스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며 소니도 한때 흔들렸지만, 지금은 사업 전환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CES 기간 동안 소니는 전시장 곳곳에 ‘라스트 오브 어스’ ‘귀멸의 칼날’ 등 소니의 콘텐트 지식재산(IP)을 활용한 볼거리를 내세웠다. 수많은 서양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소니 전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게임과 영상 콘텐트로 사업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소니의 현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시장 또다른 한쪽에서 소니는 차량용 프로세싱 시스템 ‘아키라’를 처음 선보였다. 혼다와 합작사를 세워 제작한 전기차 ‘아필라’는 즉석에서 관람객들을 상대로 사전 주문을 받고 있었다. 동시에, 소니는 스마트폰·자율주행차의 필수 부품인 이미지센서와 확장현실(XR) 기기의 미래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올레도스(실리콘 웨이퍼 위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자를 심은 패널)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기술 기업이다.
지난달 소니 주가는 장중 한때 도쿄 증시에서 25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일본 시가총액 3위에도 오랜만에 복귀했다. 20년 넘게 인력 구조조정과 뼈를 깎는 사업재편 등 극심한 고통을 이겨낸 끝에 소니는 부활하고 있다.
영원한 선두는 없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술 기업 앞에는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잔인한 법칙이 두 일본 기업의 희비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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