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5억짜리 버킨백, 월마트선 11만원? 나오자마자 매진, '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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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여러분은 ‘에르메스 버킨백’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나요.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장인의 손길, 소형차 한 대 값은 너끈한 가격, 거기에 사고 싶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소성 등이 생각나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버킨백을 똑 닮은 ‘워킨백’이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에 출시되면서 화제를 낳았습니다. 최소 1만 달러(약 1495만원)에서 최대 40만 달러(약 5억8399만원)가 넘는 이 최고급 가방과 유사한 제품이 단돈 약 80달러(약 11만7000원)에 판매됐어요. 겉은 천연 소가죽을 사용하고 안감은 합성 가죽을 적용해 원가를 낮춘 것이죠. 이 워킨백이 나오자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소셜미디어(SNS)에 후기를 올리고 입소문이 나면서 순식간에 매진됐대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모방 디자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동시에 “에르메스 로고만 없을 뿐, 품질과 디자인이 같다”는 긍정적 평가가 대립했다는 사실에요. “원조의 모조품”이라는 비난을 뒤로 한 채, 고가품을 대신하는 저가 대체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 대체품을 두고 ‘듀프(Dupe)’라는 말도 생겨났답니다. 오늘 비크닉은 2030 사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듀프 인기에 대해 짚어보려고 해요.
명품 저리 가라, ‘가성비 대체품’이 뜬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줄임말이에요. 이 단어는 단순히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베낀 ‘짝퉁’이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아요. 값비싼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과 거의 유사한 품질과 디자인을 지닌 저렴한 대체품을 뜻해요. CNN과 월스트리트 저널 등 해외 매체가 영미권 Z세대의 소비 행태를 분석하면서 이 용어가 처음 언급됐어요.
듀프가 주목 받은 사례로 ‘요가복계의 샤넬’로 불리는 애슬레저 브랜드 룰루레몬을 들어볼게요.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룰루레몬의 듀프를 내놓은 신진 브랜드들이 MZ세대 사이 주목받으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실제 ‘CRZ요가’가 내놓은 바지는 룰루레몬 ‘얼라인 레깅스’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디자인과 품질을 비슷하다는 이유로 ‘대체품’이라는 호평을 얻었죠.
지난 2023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 중 51%는 ‘듀프 제품을 찾는 것이 즐겁다’고 했어요. 같은 해 시장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미국 성인 2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역시 응답자의 약 3분의 1이 듀프를 구매했다고 답했는데요. 이중 약 70%가 “듀프 소비로 적은 비용으로도 럭셔리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고 했고, 51%는 “듀프 제품을 찾는 것 자체를 즐긴다”고 했어요. 듀프는 미국뿐 아니라 핵심 명품 소비 국가 중 한 곳인 중국까지 퍼진 상황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국 SNS에서 듀프를 뜻하는 ‘핑티’의 검색 횟수가 3배 늘었대요.
국내에서도 듀프를 소비하는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에요. 다이소의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6만3000원짜리 샤넬 립앤치크밤 유사품을 3000원에 판매해 ‘샤넬 저렴이’로 입소문 나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어요. 또 유니클로가 유명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르메르와 협업한 제품은 본래 고가 브랜드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가격은 훨씬 낮아 ‘르메르맛 유니클로’라는 별명이 붙으며 화제가 됐고요. 30만원대에 달하는 젠틀몬스터 선글라스의 6분의 1인 가격인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블루엘리펀트도 듀프 소비에 힘입어 급성장했어요.
2030이 듀프에 열광하는 이유
젊은 세대가 듀프에 열광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우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이들이 많아지며 체감물가가 높아진 탓이 크죠.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듀프 트렌드를 확산했다고 볼 수 있는데, 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상대적으로 예산이 제한된 소비자층에서 두드러져요. 이에 더해 요즘에는 전보다 ‘플렉스(FLEX)’와 같은 과시 문화가 없어진 영향도 있어요. 전문가들은 코로나 보복소비의 후유증으로 젊은이들이 보여주기식 소비에 지쳤다고 분석해요. 『트렌드코리아 2025』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금리와 고물가가 시장의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는데, ‘현재의 행복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고 외치는 이들이 줄었다”고 했어요.
대홍기획은 ‘2025 D.라이프 시그널 리포트’에서 “럭셔리 산업이 위기에 직면하는 등 소비와 투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태도가 두드러진다”고 짚었어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요노(You Only Need One·YONO)’족들이 늘어나면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소비가 강조되는 시대가 된 것이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에서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보이는 소비보다 내가 만족하는 실용적인 소비를 선호한다’는 답변이 89.7%를 차지했어요. 직장인 고모(28)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값비싼 옷을 수집하는 것에 빠졌었는데, 이제는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에서 괜찮은 것만 골라 산다”며 “프리미엄 제품과 디자인과 품질이 유사하지만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구매할 수 있는 패션·뷰티 제품을 더 찾게 된다”고 말했어요.
듀프 제품이 SNS에 자주 소개되면서 서로 추천하고 구매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영향도 있어요. 숏폼 위주로 소비되는 SNS에 올리기 좋은 재료로 사용된 덕이죠. 틱톡에서 ‘#듀프’ 관련 조회 수는 100억회 이상을 기록할 정도예요. 이런 모습은 201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확인할 수 있어요. 1세대 뷰티 유튜버들이 명품 화장품 브랜드의 ‘저렴이 버전’을 추천하는 영상들이 1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끈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듀프와 카피 사이…저작권 괜찮을까
이처럼 듀프 소비에 긍정적인 이들이 많지만, 일부에선 디자인 유사성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듀프로 포장한 ‘카피(Copy)’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냐”며 기존 브랜드의 창작성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답니다.
이에 대한 해당 기업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에요. 지난해 8월, 미국 고급 가구 브랜드 윌리엄스 소노마는 ‘듀프 닷컴’ 사이트를 상대로 자사 듀프 판매하는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어요. 미국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이글 역시 아마존을 상대로 “소비자를 열등한 품질의 모조품으로 유도했다”며 소송을 걸었죠. 이와 반대로 룰루레몬은 듀프 열풍을 역이용해 “듀프 제품을 가져오면 자사 제품으로 무료로 교환해주겠다”는 이색 이벤트를 내걸었답니다.
법적으로 듀프 제품을 저작권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저작권법은 통상 상표나 브랜드명이 직접 침해될 때 문제가 되는데, 디자인 유사성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죠. 원본 제품의 상표나 디자인 등을 복제하거나 특허받은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불법이 될 수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듀프 제품은 아이디어나 스타일을 참고하면서도, 법적 문제가 되지 않도록 디자인을 수정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어요.
다만 김가헌 법무법인 일호 변호사는 “디자인은 저작권법이 아니라 ‘디자인보호법’이라는 별도 법률이 있다. 디자인도 위 법률에 따라 등록이 되면 동일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사 디자인이라도 법적으로 보호받게 된다”며 “디자인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손해배상책임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도 받을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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