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훈아답게 살다 갈 것"…나훈아, 직접 개사한 마지막 곡 부르다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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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믿었다 후회 역시도 없다/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
가수 나훈아가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개최한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이하 라스트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부른 ‘사내’의 노랫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넣어 개사한 그는 “구름 위를 걷는 스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젠 땅 위를 걷겠다”며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에 몰입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박수칠 때 떠나라’는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는 편지로 은퇴를 선언한 후, 약 1년 동안 전국의 팬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했다. 지난해 4월 인천을 시작으로 대전, 광주, 울산, 대구, 부산 등 14개 도시를 돌았고 마지막 도시인 서울을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서울 공연은 10일~12일 총 5회차로 마련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 티켓 4만3422장이 팔렸다.
최영균 대중문화평론가는 “패티킴 사례가 있지만, 우리나라 톱 연예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위치에서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훈아는 방송에 의존을 하지 않으면서 공연으로만 오랜 기간 톱의 지위를 유지한 이례적인 가수이기도 하다. 그런 공연이 계속 매진이 되고 잘 되는 상황에서 은퇴를 한다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연의 기획과 연출을 맡은 나훈아는 “처음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다. 연습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했고, 내가 소리 지르고 성질부려도 묵묵히 혼나가면서도 여기까지 와 준 스태프들 생각하면 울컥한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이 괜히 스태프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라고 속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나이가 한 번 얘기했으니 끝”이라며 은퇴 의사를 재확인했다. ‘라스트 콘서트’의 시작인 인천 공연에서는 “피아노 앞에 절대 앉지 않을 것이고 기타도 안 만지고 책은 봐도 글은 절대 안 쓸 것이다. 노래 안 하고, 안 해본 것 하면서 살겠다”며 곡도 쓰지 않겠다는 의미의 ‘완전한’ 은퇴임을 선언한 바 있다.
서울 공연을 찾은 김용화씨(70)는 “좋아하는 오빠의 마지막 공연이니까 어떻게든 표를 구해서 꼭 보고 싶었다. 나훈아는 곡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재주꾼이다. 일생을 멋지게 살아왔는데 이별까지 멋지게 한다”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나훈아의 ‘영동 부르스’를 작사, 작곡한 원로 작곡가 안치행은 “대중가수로서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떠날 때도 그 모습이길 바라는 것 같다. 나훈아는 100년에 한 번 나올 가수다. 그런 가수가 은퇴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사나이답게 화끈한 나훈아 성격을 보여주는 이별이다. 세대 교체를 위해서라도 나훈아처럼 충분히 활동을 했다고 본인이 느꼈을 때, 멋지게 정리하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고 밝혔다.
“뒤집고 꺾는 창법 내가 만들어”
나훈아는 공연에서 1967년 데뷔해 2025년까지 햇수로 59년 활동했다고 했다. ‘1967~2025’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고 또 다른 무대 의상인 소매가 찢어진 체크 셔츠에는 오른쪽 가슴에 ‘58’, 왼쪽 가슴에 ‘1967~2024’이 적혀 있었다. 음반으로 확인되는 나훈아의 데뷔곡은 1968년 발표된 ‘내 사랑’이다. 당초 데뷔곡으로 프로필에 적힌 ‘천리길’은 1969년 5월 29일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제작한 컴필레이션(편집) 앨범에 수록됐다.
나훈아가 지금까지 낸 앨범은 무려 200장 이상, 12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한다. 그는 “세계에서 자작곡으로 가장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가 바로 나”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대에선 ‘고향역’, ‘홍시’, ‘사랑’, ‘영영’, ‘고장난 벽시계’ 등의 히트곡 행진이 이어졌다.
나훈아의 프로필상 나이는 1947년생 78세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그보다는 적다. 남진은 지난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용필이 나훈아보다 나이가 많다”고도 말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가 조사한 책 『대중가요 제40집』에는 1951년 2월 11일로 소개돼 있다고 한다. 나훈아와 중학교 시절 야구를 같이 했다는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나훈아는 1950년생”이라고 확신했다. 과거엔 ‘연예인 나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기에 프로필엔 올려 적은 것으로 보인다. 1947년생이건, 1950년생이건 박정희부터 역대 대통령 11명을 거쳐오며 수많은 히트곡을 낸 가요계 전설임은 분명하다.
‘라스트 콘서트’에선 나훈아가 히트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스크린 속 자신의 1980~90년대 음성과 듀엣해 눈길을 끌었다. 흰 수염을 가진 백발의 나훈아와 수줍은 미소의 청년 나훈아 모습이 대비됐다.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했던 1997년 SBS 특별공연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 무대도 보여줬다. 나훈아는 “중환자 한 분이 노래 ‘인생은 미완성’을 신청했는데 무대에만 있을 수 없어 내려갔다”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공연이라고 했다.
나훈아가 잊을 수 없는 무대로 꼽은 또 다른 무대는 1996년 일본 오사카 공연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외친 일이다. 그는 “부산 초량동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일본이 독도가 자기들 거라고 우기는데 속이 뒤집어졌다. 마침 일본에서 공연 제안이 와서 ‘독도는 우리땅’을 소리칠 마음을 먹고 갔다. 연습 때는 통역이 있어 ‘나나나~’로 뭉개버렸고 실제 무대에서 해버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이 만든 ‘뒤집고 꺾는 창법’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냈다. “내가 이 창법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한다고 누가 그러던데, 그게 아니고 내가 만든 거다. 내가 한 이후로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는데, 어쩔 땐 아무 때나 뒤집고 꺾어서 ‘아이고 저러면 안 되는데 우예하면 좋겠노’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유행가로 이 창법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이미자 ‘울어라 열풍아’, 배호 ‘누가 울어’를 불러 박수를 이끌었다.
“괴소문, 지금은 웃지만…”
나훈아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살면서 결혼식 한 번도 안 해봤다. 그런데 내가 세 번, 네 번 이혼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예식은 없었어도, 나훈아는 가수 후배 정수경과의 이혼을 놓고 긴 법적 다툼을 벌이다가 2016년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았다. 정수경과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뒀다. 이에 앞서 배우 김지미와 대전에서 함께 살며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배우 고은아의 사촌 이모씨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진과 나훈아 라이벌 구도가 심화했던 1970년대에는 “남진이 사주했다”고 주장하는 괴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적도 있다. 나훈아는 이 모든 일들을 “오래 활동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면서 목숨까지 내놓고 노래할 때도 있었고, 그 이야기를 다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고 축약했다.
연예계 전설의 사건으로 기억되는 2008년 기자회견에 대해선 “나훈아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싶지만, 기억나십니꺼. 나보고 밑에가 다 잘렸다카고”라며 “지금은 웃지만, 그때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라고 사투리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당시 나훈아는 일본 폭력조직에 의한 신체절단설 등의 괴소문에 “5분간 바지를 내려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라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돌직구 대응으로 화제가 됐다.
이 사건 이후엔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고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말을 남긴 채였다.
“익명 기부부터 작별까지 나훈아 답다”
나훈아의 복귀는 2017년이다. 2006년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이후 11년만에 앨범 ‘드림 어게인’을 내고 전국 투어를 개최했다. 당시 소속사는 “다양한 리듬과 색깔의 곡들로, 그동안 나훈아가 가슴에 담은 꿈들을 세상에 꺼내놓았다”고 설명했다. 타이틀곡 ‘남자의 인생’은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를 모았고 복귀 콘서트는 예매 오픈 7분만에 전석 매진됐다.
2020년엔 15년만의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는 KBS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펼쳤다. 방송 이후엔 ‘테스형’이란 노래로 전국에 열풍을 가져오며 건재한 가황의 면모를 보였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하소연하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이다.
‘라스트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테스형의 이름을 빌려 관객들에 조언했다. “노래를 하도 부르니 꿈에 테스형이 나온다. 테스형이 하는 이야기가, 주변 신경쓰지 말고 혼자 제대로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 나를 위해 무얼 하면 좋겠는지 거울에게 물어봐라. 정말 중요한 또 하나는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다 쓰고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훈아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엔 코로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 3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이 알려졌다.
공연 말미 나훈아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시작하는 작별 노래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드론에 마이크를 달아 보낸 후엔 객석을 향해 90도 인사를 한 후, 등장했던 모습 그대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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