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날 선 은유가 풍자…힘있는 자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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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이 1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는 ‘장진 식 코미디’ 대표작인 연극 ‘꽃의 비밀’을 들고 돌아왔다. 전민규 기자

작가나 감독, 연출가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 ‘장진 식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지난 1995년 연극 ‘서툰 사람들’을 내놓으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던’ 장진 감독은 이후 ‘킬러들의 수다’,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영화에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세계관과 유머를 선보였다. 엄숙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느닷없는 대사 한마디에 허를 찔린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무장해제당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장진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인 연극 ‘꽃의 비밀’을 들고 돌아왔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 축구에 빠져 집안일을 소홀히 하던 남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2015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0%를 넘기며 인기를 모았고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됐다.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진 감독은 “어려운 시대, 사람들이 연극을 보며 실컷 웃다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데뷔 30년, 본인 이름이 장르가 됐는데.
“‘장진 식 코미디’란 말은 늘 민망하다. 양식적으로 보면 (이런 류의 코미디는) 늘 존재해 왔다. 단지 내가 작품을 일찍 시작했고 언론 등에 많이 회자하면서 그런 이름표가 붙은 것 같다. 다만 기질적으로 엄숙주의를 싫어하고, 은유를 미덕이라 생각한다. 은유를 날 서게 하면 풍자가 된다. 그것은 권력 집단, 힘 있는 자들로 향할 수 있다. 진지하고 엄숙한 상황에서의 조크가 좋다.”
장진 작품은 여타 코미디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사실은 아주 단순하고 가볍게 출발한 경우도 있다. 영화 ‘아는 여자’의 출발점은 ‘손 한번 안 잡아 보는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총 안 쏘는 전쟁 영화’ 같은, 어떻게 보면 치기 어린 생각들로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꽃의 비밀’이 10주년을 맞았다. 초연 당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엔 재밌다고 여겨졌지만 다시 보니 ‘아니다’ 싶은 부분은 압축·생략했다. 나이가 드니 모험을 하고 싶지 않더라(웃음). 연출로서 과거엔 내 해석을 밀어붙였는데, 이제는 눈에서 ‘레이저’를 반납하고 목청은 세월에 내줬다. ‘즐거운 노쇠’ 과정이라 생각한다.”
최근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코미디를 내놓는 부담감은 없나.
“너무 큰 사건이 터졌고 충격도 컸다. 경기가 좋지 않고 ‘살 맛 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무대를 보고 실컷 웃으며 쉬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의 바람은 나와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은 젊은 세대가 한 곳을 보며 같이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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