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캐나다산 산적, 배 대신 망고…"조상님 적응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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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명희(43)씨는 정육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저녁 반찬으로 소고기뭇국을 끓이려는데 국산과 수입산 소고깃값 차이가 커서다. 한우 1등급 국거리 한 근(600g) 가격은 3만5880원, 미국산(척아이롤)은 2만3880원으로, 1만2000원 차이가 났다. 결국 김씨는 한우 대신 미국산 국거리 한 근과 러시아산 동태(5980원) 두 마리를 샀다. 김씨는 “국산이 믿을만하지만, 가격 차이가 워낙 크니 최근엔 수입산을 자주 산다”고 말했다.
김씨의 진짜 고민은 2주 앞으로 다가온 설 차례상이다. 국산 문어 한마리(1㎏)는 5만9900원, 수입산(모리타니)은 2만원이나 저렴한 3만9990원이다. 차례상에 배나 사과 대신 망고나 오렌지를 올리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김씨는 “차례상에 수입산 올리는 걸 꺼리는 시부모님 눈치가 보이는데, 비용 부담을 생각하면 수입산이 답”이라고 말했다.
꺾일 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 밥상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국산 먹거리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 비중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2.3%)은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대를 유지했지만, 장바구니 물가를 결정짓는 신선식품 물가는 9.8%나 뛰면서 소비자 손길이 수입산으로 향하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산 돼지고기 판매량이 5% 증가한 사이 캐나다산은 20% 증가했다. 문어도 국내산 판매량은 15% 줄었지만, 수입산은 10% 늘었다.
이 때문에 당장 설 차례상에도 수입산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가 지난 13일 대형마트에서 차례상 장보기(주요 품목 30가지)를 해보니 국내산과 수입산 가격 차이가 컸다. 국내산으로만 상차림을 했을 때는 32만원이 필요했지만, 수입산으로 장을 보니 18만원으로 해결됐다. 수산물(조기‧동태포‧북어포), 축산물(육전‧닭백숙‧국거리‧달걀), 채소(무‧애호박‧배추‧대파), 나물(숙주‧고사리‧도라지‧시금치), 견과(대추‧밤‧곶감), 약과‧시루떡‧식혜‧쌀‧떡국 떡‧밀가루‧두부는 같은 품목으로 샀고 과일은 사과‧배 대신에 망고‧바나나를 선택했다.
수입산 먹거리 입지가 커진 데는 정부의 관세 인하 영향도 크다. 정부는 고물가 대응책으로 할당 관세를 자주 꺼내들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낮춰 수입산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에 따라 관세청이 수입 가격을 공개하는 농·축·수산물 102개 품목 중 67개 품목의 수입량이 1년새 늘었다. 정부는 이번 설을 앞두고 내놓은 민생 안정대책에도 할당 관세를 포함했다. 오는 4월까지 배추(27%)와 무(30%)의 할당 관세가 ‘0%’, 파인애플‧망고‧오렌지‧아보카도 등 10개 수입과일에 대해서도 할당 관세를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국내산 먹거리 생산 및 유통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금배’ ‘금딸기’로 불릴 정도로 배‧딸기 값이 오른 이유는 관련 농가가 줄어들면서 국내 생산량이 감소한 영향이다. 대규모 보관 창고 확보 등으로 수급 조절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식량 안보 우려도 있다. 수입산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환율이나 생산국가의 상황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9.3%다. 승준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제 시장의 불확실성과 재난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식량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 비축 물량을 늘이고 품질 유지를 위해 일정 물량을 교체하는 회전비축 방식 도입 등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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