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둘기적 동결 택한 한은, 계엄 쇼크에도 환율 불안에 숨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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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당초 ‘계엄 쇼크’에 경기 하강 위험이 커지면서 지난해 10월ㆍ11월에 이어 3연속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강달러에 국내 정치 불안이 겹치면서 달러당 1400원대 후반까지 하락한 원화가치가 발목을 잡았다. ‘트럼플레이션(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 대통령이 촉발한 고물가)’ 우려 등에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여부까지 불확실해지면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한 템포 쉬어 가기로 했다.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어 현재 연 3%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중 5명 찬성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한은은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을 통해 “예상치 못한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성장의 하방위험이 커지고 환율 변동성이 증대됐다”며 “향후 국내 정치 상황과 주요국 경제정책의 변화에 따라 경제전망ㆍ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좀 더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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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이번 결정의 가장 큰 변수는 고환율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에는 환율 수준의 영향을 작게 봤지만 지금은 (정치 리스크 등으로) 환율이 필요 이상 올라갔기 때문에, 그 높아진 환율이 물가와 특히 내수에 미치는 영향을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간 변동환율제 하에서 특정 환율 수준을 염두에 두고 통화정책을 펴진 않겠다고 강조해왔는데, 현재 환율 수준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나 한ㆍ미 기준금리 격차(최대 1.5%포인트 차)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또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생산자물가→소비자물가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물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금통위 내부에선 한은이 환율을 고려하다가 자칫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금통위원 6명 중 1명이 0.25%포인트 인하 소수 의견을 낸 이유다. 신성환 금통위원은 “금리 인하라는 방향성이 이미 외환시장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고, 경기 둔화로 수요가 줄어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경기에 중점을 둔 금리 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다른 5명의 위원들도 이에 동의했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한 번은 쉬어가기로 했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고심끝에 한은이 택한 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 동결’이다. 금통위원 6명 전원이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은이 경기 상황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총재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며 “경기를 고려하고 있는데 조정 시기를 본 것이고, 인하 사이클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장 비상계엄 여파에 소비 심리가 바닥인데 경제에 숨통을 틔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확장 재정으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추가경정예산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11월 전망치(0.5%)보다 낮아져 0.2% 이하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최근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와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2.2%ㆍ1.9%)를 모두 낮추는 요인이다. 이에 한은은 이날 내수 침체로 고통받는 저신용 자영업자와 지방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5조원 규모의 금융중개대출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900억원 규모의 이자 부담 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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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이 총재는 “지금으로선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정치 불안 해소”라고 강조했다. “헌재 탄핵 심판 절차가 지난 두번의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경제가 정치와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정치적 리스크로 오른 30원 정도는 다시 내려가지 않을까 한다”면서다. 다만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기 하강이 심해지면, 한미 금리 차를 좁히더라도 원화 가치는 더 하락할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추가 금리 인하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우선 안도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 거래일(1461.2원)보다 4.5원 오른 1456.7원에 마감했다. 코스피는 2527.49(종가 기준)으로 전 거래일(2496.81) 대비 30.68포인트(1.23%) 상승 마감했다. 지난해 11월25일(2534.34ㆍ종가기준) 이후 52일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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