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업도 일도 한평생 함께 한 부부, 같은 날 눈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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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지웅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왼쪽)와 고(故) 김지자 서울교대 명예교수 부부의 팔순 축하연 사진. [사진 유족 정양희씨]

학업도, 평생 과업도 함께 했던 부부가 같은 날 눈을 감았다. 농촌 교육의 선구자, 정지웅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와 김지자 서울교대 명예교수 부부의 이야기다. 유족은 부부가 지난 14일 별세했다고 16일 중앙일보에 전했다. 정 교수는 85세, 김 교수는 84세.

부부는 서울대 교육학과 선후배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 교수는 58학번, 김 교수는 59학번이었다. 6·25 전쟁(1950~53) 직후 농촌부터 살려야겠다는 게 부부가 나눈 목표였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금도 각각 확보했으나, 농촌 교육에 헌신하기로 삶의 방향키를 바꿨다. 아시아 지역 개발을 연구하기 위해 택한 곳은 필리핀.

필리핀 유학은 부부에겐 운명이었다. 졸업 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던 김 교수에게 필리핀 출장 기회가 온 것. 김 교수가 필리핀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 교수는 “아시아 지역의 농촌 문제를 남편과 함께 연구하면 어떻겠냐”고 권했고, 김 교수도 자연스럽게 당시 시작됐던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귀국 후, 정 교수는 서울대 농대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7년 설립된 서울대 새마을운동 종합연구소에 관여하다 소장까지 맡으며 새마을운동 연구에 집중했다. 1986년 농업교육학회부터 2000년 아시아농촌사회학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부인 김 교수도 연구 활동을 함께했다. 부부가 함께 1973년 『지역사회 개발: 그 이론과 실제』를 펴내기도 했다.

은퇴 후 정 교수에게 부인 김 교수는 눈이자 손발이 돼주었다고 한다. 유족인 막내딸 정양희씨는 중앙일보에 “약시(弱視)인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24시간 함께 하셨는데 어머니가 생전 ‘아버지 혼자 가시게 하면 안 되니 나도 함께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다”며 “두 분이 워낙 금슬이 좋으셨기에 소설 같은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교수를 간호하던 김 교수가 지난 14일 잠시 운동을 하러 갔다가 심정지가 왔고, 약 6시간 후 정 교수도 눈을 감았다고 한다.

유족은 1남 2녀(정광호·정선희·정양희)와 며느리 이현정씨, 사위 황용하·전우열씨. 서울성모병원, 발인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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