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방재 1인자 "처참한 모습에 눈물…예상보다 지진 강도 셌다" [한신대지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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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방재분야 1인자인 무로사키 요시테루(室崎益輝·80) 고베대 명예교수는 30년전 한신(阪神)대지진 당시 회의 참석차 오사카에 머물고 있었다. 이튿날 고베로 돌아온 그는 처참한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신대지진 발생 이전부터 효고현과 고베시의 방재분야 자문을 맡았던 그는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진 강도가 셌다”며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방재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 한신대지진이 일어난 지 30년이 됐다. 이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내진 기준도 대폭 강화됐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줄었나.
- "단순 비교는 어렵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희생자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 노토(能登)반도 지진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일어났다. 다만, 한신대지진과 비교했을 때 노토반도 지진으로 전파된 건물 수는 3배나 많았다. 오래된 주택이 많고 내진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토반도 지역의 건물 중 내진 설계된 건물은 절반 정도였다. 비용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내진설계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는 내진 기준을 충족하는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는 반면, 지방에서도 오래된 목조 주택이 많은 지역의 경우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내진 보강을 위한 공적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
- 고령자들은 살고 있는 집의 재건축을 꺼리는 편이다.
- "그렇다. 과거에는 부모가 살던 집을 자녀가 물려받으면서 20년에 한 번씩 대규모 리모델링을 했다. 지금은 집을 물려받는 사람이 적고, 물려받아도 굳이 수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일본에선 오래된 목조 주택이 대중적인데, 시멘트 건물은 사람의 온기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 "그렇다. 내진 보강은 중요하지만, 교토를 예를 들어보자. 목조건물이 즐비한 오래된 거리 풍경이 교토의 아름다운 문화다. 교토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모든 건물을 철근 건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면서도 문화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재해에 대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다."
- 30년 전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재해 발생 시 외국인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하고 있나.
- "고베는 재일 한국인을 포함해 원래 외국인 거주자가 많았다. 그런데도 지진 당시 외국인들이 대피소로 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이후 다문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고베에서는 다국어 방송을 제공하는 FM 라디오국이 생겼다. 나가타구에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쓰인 표지판도 많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30년 전의 교훈을 통해 개선되고 있는 부분이 많다."
- 지진 생존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한신대지진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자책감과 상실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 큰 과제였다. 지금도 1월 17일이 다가오면 TV조차 보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삶의 의미와 사회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진 직후 지방 출신 학생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는데, 이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쇠약해졌다. 그래서 당시 이 학생들을 화재로 소실된 지역의 현장 조사에 참여하도록 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치유되는 사람도 있었다."
- 최근 피해자나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SNS에서 공격받는 일이 사회 문제가 됐다.
- "일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SNS에서 유언비어가 확산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진 복구를 위해 30년 동안 노력해왔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매우 슬프다."
- 노토반도 지진에서는 이시카와현 지사가 2차 피해 등의 우려를 이유로 봉사활동 자제를 요청했다.
- "그것이 봉사자 감소의 진짜 이유는 아니다. 한신대지진 당시에는 도로가 끊겨 차가 다닐 수 없었는데도 하루 약 2만 명의 젊은이들이 걸어서 고베시를 찾아왔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봉사 원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온라인 비방글 때문인지 봉사에 참여하는 이가 많지 않다."
- 방재와 관련해 요즘 하는 일은?
- "지난 30년간 가능했던 일과 불가능했던 일을 검증하고 있다. 이런 자료가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다음 30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로사키 요시테루 고베대 명예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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