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찬탄도 반탄도 "민주주의 수호"…관저 앞, 두 개의 대한민국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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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윤 탄핵 찬반 시위대로 본 정치 양극화
“찢재명, 이죄명, 민노총은 간첩.” “윤석열 밟아버리자 악~.”
14일 오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두 개의 한국’이 펼쳐졌다. 500m도 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한 건 탄핵 반대 측이다. 다음날 오전 5시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대 인파는 급격히 불어났다. 오후 6시가 되자 한남동 국제루터교회 앞 탄핵 반대 시위대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컵라면이 동이 났다. 경찰은 시위대에서 나오는 방향으로만 이동이 가능하도록 육교를 봉쇄했다. 경찰 관계자는 “6000명 가량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오늘, 우리는 다 죽는다” “용기없는 사람은 가라”며 서로를 고무하는 외침이 이어졌다. 오후 6시 전광훈 목사가 무대에 오르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전 목사가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외치자,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주먹을 들고 ‘멸공!’을 외치던 30대 여성은 “밤이 돼서 시위해야 하는데 잘 안 보여 경광봉을 1만원에 샀다”며 “시위에 나와 민주노총에게 손도 할퀼 정도로 밤엔 더 시위가 과격해져 완전 무장을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현장을 생중계하는 20·30세대 유튜버들도 있었다.
같은 시각 100m가량 남쪽에서는 180도 다른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었다. 한 유튜버는 확성기를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자”고 외치며 유튜브 중계를 하고 있었다. 다만 모인 이들은 100여 명 정도로 탄핵 반대 측보다는 적었다. 민중가요 등을 틀어 놓았지만,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것 같은 열성적인 리액션은 없었다. 이를 바라보던 20대 여성들은 잠시 멈춰있다가 지나가기도 했다. 진보당 관계자는 “여기는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이 많기 때문에 평일엔 합류하기가 어렵다”며 “지난달 29일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 이후 분위기가 꺾인 면도 있다”고 전했다.
이들을 바라보던 김수민(30·회사원) 씨는 “이태원에 볼일이 있어 가다가 궁금해서 들렀다”며 “내가 볼 땐 둘 다 과도하다. 총만 안 들었지 내전이라도 하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를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고 성토하는 양측이지만, 들여다보면 ‘거울상’처럼 닮은 구석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① 기존 미디어 불신-유튜브 시청
이날 만난 양쪽 시위대 측은 모두 기존 미디어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탄핵 반대 측에서 만난 50대 여성 박모씨(서울 용산구)는 “보수 신문을 보다가 절독했다. 다 똑같은 소리만 한다”며 “미국 유학파 출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그라운드씨가 믿음이 간다. 그 외 신의한수·홍철기TV·신인균의 국방TV 등의 유튜브 채널을 본다”고 말했다.
탄핵 찬성 측도 마찬가지. 40대 손모씨(경기 화성시)는 “기성 언론들이 바르게 얘기를 안 한다. 신천지가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신문사에 많이 취직을 시켰다고 하더라”며 “유튜브 채널 시사타파TV는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저 안 트럭에 휘발유 통을 20개 실었는데, (체포 인력이) 관저 철조망을 끊는 시간 동안 휘발유 뿌려놓고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양측 지지자들은 기존 언론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어 오프라인-온라인 어디든 양방 소통이 되고 속 시원하게 욕해주는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유튜브로 기울기 쉽다”며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에코 체임버(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며 빠지는 확증편향) 현상 때문에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② “돈 받고 나온다” vs “외국인이 있다”
상대에 대해 ‘배후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도 흡사하다.
탄핵 반대 측은 반대쪽 시위대에 외국인들이 대거 ‘잠입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태극기와 성조기를 가방에 꽂은 채 시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있던 이상욱(27·서울 송파구)씨는 “저쪽(탄핵 찬성)에 가보면 중국말과 북한말이 뒤섞여 있다. 특히 공산당 지령을 받고 중국인들이 대거 시위에 합류했다는 게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냐”고 말했다.
반면 탄핵 찬성 측은 “탄핵 반대쪽에 사람들이 많은 건 일당을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탄핵 찬성 집회를 지켜보던 40대 여성은 “지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저쪽은 노인들에게 일당을 준다. 매번 8만~10만원 정도 주는데, 언론들이 이것을 보도하지 않고 마치 탄핵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많은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③‘절체절명의 위기’ 세계관
이보다 하루 앞선 13일 오후는 눈발이 거셌다. 사람들은 준비한 우산을 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들을 지탱하는 동력 중 하나는 위기의 세계관이다. 탄핵 반대 측은 단순히 윤 대통령의 탄핵으로 규정짓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본다. 반면 탄핵 찬성 측은 ‘친미·친일 부역세력 vs 민주수호세력의 대립’으로 인식한다.
14일 탄핵 찬성 시위 현장에 있던 손모씨는 “저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이고, 사실을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성조기를 같이 들고 다니는 태극기부대는 국민의힘이 일으킨 내란의 잘못을 민주당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분개했다. 반면 탄핵 반대 측의 40대 박모씨는 “윤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기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좌우가 대립하는 게 아니라,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세상이 돼서 50년 전으로 갈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④ “내란을 막기 위해 나섰다”
양측 시위대는 모두 “진짜 내란을 막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강모씨 자매(19·21)는 “야당이 줄탄핵을 시키면서 국회를 마비시킨 게 바로 내란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되레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입법 독재, 부정선거 등 대한민국의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확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윤석열 OUT’이라고 적힌 소형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60대 남성은 “대통령이 ‘내란’을 벌인 게 명명백백 TV를 통해 생중계되지 않았나”며 “내란 세력이 체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로를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대방과의 갈등과 충돌을 ‘성전(聖戰)’으로 투사하는 인식을 우려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각 진영이 가진 프레임이 현실 인지를 막고 있다”며 “자기들만의 생각을 투사하고 덮어씌우면서 현실과 멀어지는 한편, 자기가 소속된 진영에서 공유되는 생각은 점차 강화돼 양 진영 갈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유튜브에서 음모론은 쉽게 조회 수를 올리는 산업이 되면서 다수 콘텐트가 양산되고, 정치 세력이 이것을 활용해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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