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의 대양해군 전략에 기회의 문 넓히는 한국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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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미국이 해상에서 패배(defeat at sea)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미 국방부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중국 군사력 평가 보고서’는 중국 해군이 현재 세계 최대 규모 함정을 보유하고 있고, 2030년엔 보유량이 더 늘어 미국과의 격차가 커진다고 예상했다. 2020년 군함 수에서 미국을 추월한 중국 해군은 이제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함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어 질적 차이도 좁히고 있다. 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협력 희망 분야로 지목한 배경엔 이대로라면 중국에 해군력을 추월당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미국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이 100년 전 해군력의 쇠약과 더불어 국력이 쇠약해진 영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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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7일 진수 및 명명식에 등장한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인 푸젠함

중국은 명나라 때 정화(鄭和)의 해외 원정 이후 해상을 봉쇄하고 철저히 육상 세력으로 지내왔다. 반면 해상 세력인 영국과 미국,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19~20세기 이런 강대국들에 국가를 유린당했다.

중국 해군이 중흥하기 시작한 건 덩샤오핑 시절 지금도 ’중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류화칭(劉華清) 제독 부터다. 그는 1982년 도련선(島鏈線)이라는 대미(對美) 해상 방위선을 설정했다. ‘섬(島)을 사슬(鏈)처럼 연결한 선(線)’이라는 뜻이다. 제1도련선은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제2도련선은 오가사와라 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잇는다. 도련선의 설정은 동아시아 해역의 주권을 자신들이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후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해군 규모는 가파르게 팽창했다. 1999년 이후 증강된 중국 해군력의 70% 이상이 시진핑 1·2기(2012~2022년) 때였다. 중국 지도부는 2012년 18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해군 강화, 해외 군사기지 확보를 목표로 하는 ‘해양 강국’ 건설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채택했다. 2017년 19차 당대회 때 시진핑이 해군 증강을 ‘중국몽 실현의 필연적 선택’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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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험 운항 중인 중국 항공모함 푸젠함

같은 시기에 중국 해군 전략은 ‘방어’에서 ‘확장’으로 기조가 바뀌었다. ‘제1도련선’ 안에서 적을 방어하는 ‘근해(近海) 방어 전략’이 그 너머로 해군력을 확장하는 ‘원해(遠海) 호위 전략’으로 진화했다. 중국 해군이 ‘제1도련선’ 밖으로 나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2차 대전 이후 태평양을 장악해온 미 해군에 정면으로 맞서며, 남중국해부터 서태평양까지 진출하겠다는 의미다. 2차 대전 이후 압도적 해군력을 유지하며 세계 패권을 놓치지 않았던 미국 입장에선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의 해군력에 가장 눈에 띄게 따라붙는 분야는 함정 숫자다. 저명한 군사 싱크탱크인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미 국방부에 따르면 국가별 함정 수는 2000년까지만 해도 미국이 318척, 중국이 110척으로 미국이 압도적으로 앞섰지만 2020년엔 미국 293척, 중국 350척으로 앞질렀고 지난해는 미국 297척, 중국 370척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30년엔 중국 함정 수가 435척으로 미국(304척)을 크게 앞서리라는 전망이다.

중국 해군은 미 해군의 ‘기술의 벽’은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대양 해군의 상징인 항공모함 전단(戰團)의 규모와 작전 능력은 중국이 미국에 많이 뒤처진다. 2030년까지 중국의 항모는 미국(11척)의 절반인 6척에 불과할 전망이다. 미국이 원양을 항해할 수 있는 핵 엔진의 항모라면 중국 항모는 아직 석유를 보급해야 하는 디젤 엔진이다. 배수량이 큰 구축함이나 순양함 등 위력적인 전투함의 보유량도 미 해군이 압도적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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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이 2022년 9월 23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조선(造船) 능력이 미국을 압도적으로 앞서, 미국이 현상 유지에만 머물 경우 중국이 양과 질 모두에서 미국을 앞설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조선소는 현재 일곱 곳에 불과한 반면 중국은 수십 곳에 달한다. 지난해 7월 유출된 미 해군정보국 문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선박 생산 역량이 2325만GT(총톤수)로 미국의 최소 232배라고 평가됐다. 해군 작전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구축함의 경우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23척, 미국은 11척을 진수했다. 장거리 항해 능력을 갖추고 있는 순양함의 경우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한 척도 만들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중국이 미국을 긴장시킬 정도로 뛰어난 신형 핵추진 잠수함과 핵추진 항모 제조에 나섰다는 사실도 최근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중국군은 한 척 건조에 최소 2조원 정도가 들어가는 핵잠수함 개발에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자 미국과 인도 등 시급히 건조(建造)가 필요한 국가들이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세계 조선 시장에선 중국·한국·일본이 1~3위로 시장점유율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중국은 미국과 경제 안보 분야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어 중국에 손을 내밀 수는 없다. 일본은 한국·중국 조선업에 차례로 추격당하며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해 현재 세계 점유율이 4%까지 쪼그라든 상황이다. 일본은 불황기에 조선업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줄여 생산 규모와 기술력 면에서도 과거와 같은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기술력과 제조 시설을 모두 제공할 수 있고 미국·일본과 우방국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조선업 공급망 생태계가 넓고 튼튼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울산·거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협력사 생태계는 선박 엔진, 부품 등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컨테이너선·LNG 운반선 등 상선뿐 아니라 수상함·잠수함 등 군함까지 모두 공급할 수 있다. 중국의 대양 해군 전략이 한국 K-조선에 기회의 문을 넓히고 있는 분위기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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