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안·공포 더 커졌다”…애니로 부활한 ‘퇴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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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전성시대, 원조가 돌아온다. 한국 장르 소설로 최다인 누적 100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소설 『퇴마록』 시리즈의 첫 극장판 3D 애니메이션이 내달 21일 개봉한다. 원작 소설도 신간이 나온다. 『퇴마록』 외전 3부가 올 4월 출간될 예정이다. 전편인 외전 2부(2014) 이후 11년 만이다.
지난 14일 만난 원작자 이우혁(60) 작가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소설 집필과 더불어,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작 겸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그를 서울 논현동 애니메이션 제작사 로커스 사무실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왼쪽 눈은 시신경이 죽어서 사물이 찌그러져 보여요. 나이 들며 글 쓰는 테크닉은 늘었는데 기억력은 나빠져 (소설 집필의) 고생의 총량은 불변이죠.” 소설과 맞바꾼 젊음이다. 그는 “그래도 환갑 즈음 되니 『퇴마록』을 왜 썼는지 설명할 말주변이 생겼다”며 덧붙였다. “젊을 적엔 나도 궁금했거든요.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썼지?”
작가인 그도, 독자들도 32년전 『퇴마록』에 귀신 홀리듯 휘말렸다. 1993년 소설이라곤 써본 적 없는 스물여덟 공학도가 하이텔 PC통신에 “재미삼아 끄적거린”(1994년 중앙일보 인터뷰 중) 글이 『퇴마록』의 시작이었다. 세기말 분위기 속 판타지 열풍을 몰고 오며 국내편·세계편·혼세편·말세편, 외전까지 21년간 총 21권(초판 기준)의 대작 반열에 올랐다.
『퇴마록』은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악령들을 퇴치하는 가톨릭 신부, 태극 기공 청년, 밀교 후계자 등을 다룬 한국적 오컬트 히트작의 효시였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석사 출신의 자동차 연구원이라는 이 작가 이력도 화제였다. 데뷔작에 코를 꿰여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 『온-The Whole』(카카오페이지 연재 중) 등 대중 소설가로 세계관을 넓혀왔다.
“『퇴마록』 판매부수가 2013년 1000만부를 넘고부턴 안 세어봤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그에게 잊지 못할 한으로 남은 작품이 영화 ‘퇴마록’(1998)이다. 안성기·신현준 등 당대 스타 주연의 블록버스터였지만 “제목만 갖다 붙였지 (원작과) 하나도 같은 게 없는” 영화였다. “시사회 전날까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논의도 없었고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을 보며 자란 ‘찐팬’들과 만들었죠.”
애니메이션은 국내편 단행본 1권 첫 에피소드 ‘하늘이 불타던 날’이 토대다. 수백 년간 은거해온 해동밀교의 교주가 악(惡)에 물들고, 밀교의 호법들이 후예 준후를 살리고자 박 신부에 도움을 청하는 내용. 향후 시리즈 제작도 염두에 둔 출발이다.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2024) 등을 만든 로커스와 2019년 『퇴마록』 전편의 판권을 계약하며 기획·개발부터 함께해 6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퇴마록』의 본질이 뭐냐고 묻자, “인간의 공포를 없애기 위한 소설”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 공포를 주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
- “어릴 적 귀신을 네댓 번 봤다. 버스에서 졸 때도 가위에 눌릴 만큼 겁이 많았다. 『퇴마록』을 쓸 때 이걸 다 정복해서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은 꽤 극복했다.”
-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설로 파헤친 덕인가.
- “무협이나 종교적 신화, 신적인 힘, 초능력 등이 다 일종의 불안 해소 수단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존재론적 공포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대항 수단을 상상하는 거다.”
- 최근 오컬트 인기도 그런 불안 탓일까.
- “그렇다. 예전엔 종교의 역할이 컸는데 많이 퇴색했다. 과학만능시대라지만, 일반인의 과학 수준이 불안을 없앨 수준까지 다다르긴 힘들다.”
- 동시대 가장 큰 공포라면.
- “미래에 대한 불안. IMF 금융위기를 거치며 개인이 겪는 불안과 공포가 커졌다.”
- 퇴마사들이 가톨릭, 불교, 무속 등 여러 종교의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다.
- “『퇴마록』에서 진짜 쓰고 싶은 주제였다. 서로 믿고 존중하는 것.”
- 각주만 다룬 해설집이 책 한권 분량으로 나오기도 했다.
- “참고 서적이 2000권쯤 된다. 종로2가에 있던 종로서적(1907~2002)의 먼지 쌓인 옛날 책 더미에서 도서관에도 없는 밀교 관련 서적을 구했다.”
- 신작 계획은.
- “예전 『퇴마록』 완결에 독자들 불만이 많았다. 양자적 세계관을 생각한 건데 당시엔 이해를 못 받았다. 4월에 불교·노장사상을 접목한 외전 3부가 나온다. 이로써 『퇴마록』 1기를 마무리하고, 2기 집필도 준비 중이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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