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독] 더 센 트럼프 온다…"이게 최대 걱정" 10대 그룹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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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국내 10대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미칠 가장 큰 영향으로 ‘대중 견제 강화 및 공급망 재편’ ‘에너지 및 환경 정책 변화’를 꼽았다. 중앙일보가 삼성전자·SK이노베이션·현대차·LG에너지솔루션·포스코·롯데쇼핑·한화솔루션·HD현대중공업·GS칼텍스·신세계이마트(2024년 기준 농협 제외 대기업집단 자산 규모 순, 이하 그룹명 표기) 등 10대 그룹 핵심 계열사에 설문한 결과다.

중국 쑤저우 등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트럼프 2기의 통상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당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에 따른 불안감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멕시코에 가전 제조공장을 두고 미국으로 수출하는 만큼, ‘무역 정책 변화(보편관세 도입 등)’에 따른 영향도 크다고 답했다.

포스코 역시 무역 정책 변화와 미국 우선주의 확대로 인한 영향이 클 것이라고 답했다. 포스코는 “미국 내 투자 촉진 요구와 북미시장 판매 감소가 우려된다”라며 “미·중 관세전쟁 여파로 중국산의 국내 유입 확대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도 예상되며,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기지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의 에너지 정책 변화도 국내 기업에 직격탄이다. 설문조사에서 SK이노베이션·현대차·LG에너지솔루션·GS칼텍스가 해당 답변을 골랐다. 가장 우려하는 건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수년 전부터 미국 직접투자를 확대해 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주 단독 공장을 포함해 미국에서 총 7개의 공장을 가동 또는 건설 중이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부터 비상경영 중이고,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투자와 채용 모두 줄일 정도로 시장 상황을 어둡게 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의 친환경 정책 변화에 따라 대미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유 업계는 트럼프 2기의 석유 시추 확대 공약에 따라 미국산 원유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GS칼텍스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 확대에 따른 유가 변동성과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출범을 기회로 보는 산업도 있다. ‘대중국 견제 강화’ 영향이 가장 크다고 답한 한화솔루션은 미국 현지에 태양광 생산기지가 있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높이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 있다. HD현대중공업 역시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협력 확대 가능성이 있다”며 미중 틈새에서 미 우방국으로서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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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트럼프의 친원전 정책으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국내 기업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 SMR 기업 뉴스케일파워에 투자했고, 지난해 말 테라파워의 주기기 공급사로 선정되는 등 ‘SMR 파운드리’로서 입지 강화를 노린다. SK그룹도 테라파워에 지분투자를 통해 기술 개발 및 사업 협력을 추진 중이다.

美 대관 강화…로비에 총력전
기업들은 미 현지 대관 조직을 강화하고 대미 로비를 늘리며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생산거점 건설에 370억 달러 이상 투자 예정인 삼성전자는 대관 조직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GPA)실을 활용해 미국 현지 관계자들과 접촉을 넓히고 있다. 미국 로비자금 공개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삼성그룹 전체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대미 로비자금 569만 달러를 쏟아부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SK그룹도 423만 달러를 집행해 전년 동기 대비 26.6% 증가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그룹 대외협력 사장으로 영입했고, 이번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며 우호 관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LG그룹 북미 대관을 총괄하는 워싱턴사무소는 최근 로비업체 캐피톨 카운슬 등과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관맥’ 찾기에 나섰다.

다만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2기 공식 출범 이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풀어줘야 할 문제가 많다”라며 “보편관세 예외나 보조금 혜택 유지 등은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얻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국내 정치적 혼란으로 외교통상 역량 위축이 우려되는데, 이런 상태가 장기화하면 우리 기업들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미국 행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안정적인 관계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1기 때와 달리 2기는 외교 파트너인 한국 정부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며 “어렵더라도 기업들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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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트럼프 1기 때 한국 기업들 대응은

2017년 1월부터 4년간 이어진 트럼프 1기 때를 돌아보면, 한국 주요 대기업들이 빠르게 움직여 미국의 통상 압박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한국 기업에도 현지 투자를 대놓고 요구했고, 삼성전자는 201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카운티에 3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Thank you, SAMSUNG!”(고마워요, 삼성!)이라고 올리며 러브콜을 보낸 지 약 4개월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LG전자 역시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건설해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발맞췄다. 다른 기업들도 잇달아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SK는 셰일가스 개발 등에 최대 4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현대차는 15개 계열사를 통해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 개발에 31억 달러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 과정에선 기업 총수와 정부도 한 몸이 돼 움직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방미경제인단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현 명예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현 LS 이사회 의장) 등 총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당시 현대차 부회장이었던 정의선 회장도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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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6월 28일(현지 시간) 오후 워싱턴 D.C. 해이아담스호텔에서 열린 ‘방미 경제인단과의 차담회’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미국통’ 앞세우기 전략도 활발했다.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전무였던 김원경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현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GPA) 실장·사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GPA팀을 맡겼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기획단 협상총괄팀장을 역임한 외교통상 전문가다. SK이노베이션도 같은 해 한미 FTA 수석대표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연세대 특임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대외 협력 전략을 강화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당시 발 빠른 대응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며 “당시 대대적으로 이뤄진 대미 투자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있는 만큼 자동차 등 맞춤형 추가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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