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문희상 "민주화 이후 대통령 8명 다 불행…그러면 제도가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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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의 위기도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을까. 79세의 노(老)정객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지금을 “헌법 개정의 적기”라고 말했다. “개헌은 힘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또는 미래를 새로 설계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만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개헌 논의를 이끌어갈 주체로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지목했다. 그는 “대통령이 아니어도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며 “국회의장이 여야 대표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포함하는 국정 협의체를 구성해 개헌 내용·시점까지 합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만나 반(反)독재 민주화 운동부터 대통령비서실장과 당대표·국회의장까지 두루 경험한 문 전 의장은 “개헌을 정략적으로 주장하면 실패한다”며 여권의 ‘선(先) 개헌, 후(後) 대선’ 주장에는 반대했다. 그는 “개헌도 중요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처벌을 병행해야 법치주의가 지켜진다”며 “이걸 놓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말했다. 문 전 의장과의 인터뷰는 14일 서울 여의도 김대중 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했고, 윤 대통령 구속 뒤인 22일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 12·3 비상계엄을 어떻게 봤나
- “기가 막혔다. 숱한 사람들이 아스팔트와 감옥에서 별짓을 당하면서 1987년 민주화의 단초를 열고,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로 민주주의가 완성된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군대가 국회를 찬탈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첫째는 사람 문제다. 이런 대통령이 있었나. 쿠데타를 일으켰고, 취임 직후부터 모든 상대를 반(反)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서로 다름을 걸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남 탓만 했다. 그럴 거면 대통령 책임제를 왜 하나. 대통령은 모든 걸 ‘내 책임’이라고 해야 한다.”
- 임기 내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 “노태우 대통령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모두 여소야대를 겪었다. 그럴 때일수록 대통령은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청했다. DJ는 야당 총재를 8번이나 만났다.”
- 1987년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있다.
- “100% 동의한다. 비상계엄 사태는 현행 권력구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으니 나쁜 사람이 앉으면서 이렇게 된 거다. 제도를 바꿀 때가 됐다. 다만 개헌이 정략에 빠지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 무슨 뜻인가.
- “‘대통령인데 무지막지하게 끌어내리면 되겠나’ 하는 이상한 논리에 빠지면 안 된다. 개헌 논의와 탄핵·수사는 별개다. 나쁜 사람에 대한 응징이 법치주의다. 김대중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해법도 용서·화해 이전에 진상규명과 사법 처리가 먼저였다.”
문 전 의장은 국회의장 임기 막판인 2020년 5월 8일 헌법 개정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쳤다. 유권자 100만 명이 동의하면 개헌안을 낼 수 있게 하는 ‘국민발안제’가 골자였다. 하지만 국회의원 118명만이 참여해 정족수 미달로 투표함을 열지 못했다.
- 정치권은 개헌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나
-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역지사지해야 한다. 개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는 일이다. 미래를 논하는데, 윤석열 탄핵이든 이재명 사법리스크든 과거 문제로 싸우면서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 개헌안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나.
-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도록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 제도마다 일장일단은 있지만, 이번엔 내각제를 논의해도 될 것 같다. 여건이 성숙했다. 12·3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 ‘국회가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들 하게 됐다. 그게 아니라면 통일·외교·안보·국방은 대통령이 맡고, 경제·사회·문화는 총리가 내각제처럼 운영하는‘책임총리제’도 검토해볼 만하다.”
- 대통령과 총리의 당적이 다르면 싸움만 커지지 않나.
- “그렇지 않다. 현행 헌법에서도 성공한 선례로 DJP 연합이 있다. 김종필·박태준·이한동 국무총리 시절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 같은 경제부처 장관과 산하기관장까지 다 자민련에 줬다. 경제는 살아났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극복했다.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잘라내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 문 전 의장은 DJ의 말년 글귀를 꺼내 보였다. DJ는 2009년 2월 3일 일기장에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왔으나 요즘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며 “나와 노무현 10년 동안 민주화를 적극 추진해 와서 안심이다 생각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보니 역시 제도를 바꾸어야겠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 책임제로”라고 적었다.
- 조기 대선으로 개헌 논의가 사라질 수 있다.
- “그래서 전 국민이 헌법 개정을 강하게 원해야 한다. 그러면 대선 후보 스스로 ‘내 임기를 1년 단축하겠다’고 먼저 제안할 거다. 제도는 결국 국민들의 힘으로 고쳐야 한다. 그 여론을 만드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 초유의 법원 습격이 벌어졌다.
- “사법부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 같은 헌법기구다. 폭력 행위를 선동한 사람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 어떤 면에서 기회인가.
- “다들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87년 체제 이후 대통령 8명이 한결같이 불행했네, 그러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깊어졌다. 이때가 기회다. 우리 국민은 어려울 때 고난을 극복하는 DNA가 있다. 정반합(正反合)으로 봤을 때 이제 7공화국, 새로운 미래 비전이 탄생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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