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진국 미국도 예외 아냐...완전한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 내전의 가능성[BOOK]

본문

17376961188433.jpg

책표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이 총기를 소지한 채 워싱턴 DC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유혈 무력시위를 벌인지 4년이 지났다. 당시 극우극단 세력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평화적 권력 이양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을 때 미국의 민주주의는 풍전등화 앞에 놓였다. 200년 넘는 민주주의 전통과 정치적 관용의 미덕을 자랑하는 미국 같은 선진국도 자칫 한순간에 내전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줬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바로 이런 위험의 가능성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내전,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분야 전문가인 바버라 월터 교수(캘리포나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는 “내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게 된다면 미국에서 언제라도 다시 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17376961190186.jpg

폭도들이 2021년 1월 6일 워싱턴의 미국 국회 의사당을 습격한 모습. [AP=연합뉴스]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에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그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내전도 수백 차례나 벌어졌다. 이 책은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북아일랜드, 르완다 등 많은 나라에서 벌어진 내전의 발발 경위 등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월터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확인한 정치 불안정 경고 징후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목격하기 시작한 징후들과 똑같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내전은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도, 완전한 독재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 구간인 아노크라시(anocracy) 상태에서 더 쉽게 발생한다. 정부가 상대적으로 허약해 반대편의 도전에 취약하기 때문. 그는 “심각하게 분열된 나라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민주화는 엄청난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며 “실제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끌어내리고 이라크를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경로에 올려놓았지만 이라크는 빠르게 내전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21세기 내전은 과거와는 뚜렷하게 다르다. 광대한 전장, 군대, 전통적 전술 등은 사라진 지 오래. 오늘날 내전에서는 주로 서로 다른 종족, 종교 집단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게릴라 병사와 민병대가 싸움을 벌인다. 미국에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가 내린 록다운 조치에 항의해 무장한 민병대가 주 의사당에 난입해 점거한 사건이 벌어졌다. 민병대는 휘트먼 주지사를 납치해 살해하고 의원들을 인질로 잡아 차례로 처형할 시나리오도 세웠으나, 사전에 FBI에 발각돼 무위로 돌아갔다.

17376961191918.jpg

2021년 1월 6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경찰 장벽을 돌파하려고 시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은이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특히 정치 파벌 지도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지지자들의 공포와 원한을 활용, 경쟁자들을 지배하려는 열망이 있는 나라에서는 언제나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승자독식의 권력 장악에 뒤이은 혼돈 상태는 한국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여러분이 먼저 목을 따지 않으면 그놈들이 당신 목을 딸 것”이라고 선동한 르완다의 후투족 정치인 레옹 무게세라의 연설이 한국에서도 통하지나 않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치가 나라 전체의 선(善)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기 집단의 성원들만 챙기는 편파적 제도로 변질될 때  그 결과는 참담해진다는 사실을 현대사는 잘 증명하고 있다.

극단적 파벌 당파 싸움이 일상화하고 있는 한국도 지금 일촉즉발의 아노크라시 상태나 다름없다. 좌우 할 것 없이 허구한 날 대규모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고 극단 성향의 유튜버들이 분열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세상이 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내전에 면역력이 있는 나라는 없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어떻게 내전을 피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에도 주목한다. 나라의 안정을 바라는 양심적인 리더라면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내전의 길만은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118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