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계좌 잔액 보여달라"…'임장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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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에 사는 A씨(28·남)는 강남·서초·용산 등 일명 ‘부동산 상급지’로 갈아타기 위해 지난해 11월 온라인 재테크 학원에서 운영하는 1회당 10만원짜리 부동산 실전 수업을 들었다. 강의 커리큘럼에는 매주 2~3명씩 조를 짜 재개발 아파트·빌라 주변 입지 임장(현장 방문)은 물론 강사를 동행해 실제 물건을 보러 가는 매물 임장도 포함됐다. A씨는 “혼자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여럿이 매물 임장을 가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어색하지 않다”며 “투자에 관심 있는 또래가 모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실매수 전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부동산 물건과 주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파는 임장을 단체로 다니는 ‘임장 크루’ 활동이 뜨고 있다. 사회초년생·신혼부부를 상대로 한 전세 사기 등이 횡행하며 부동산에 대한 불안함이 커진 동시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면서다. 29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쯤부터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성동 등 부동산 상급지에 위치한 대장 아파트 단지(해당 지역 부동산 거래량과 시세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 아파트)를 중심으로 임장 크루 활동이 크게 활성화했다.
네이버 온라인 스토어와 온·오프라인 부동산 학원 등에선 ‘임장 원데이 클래스’ ‘부동산 도슨트’ ‘강사 동행 실전 100곳 임장’ 등 1회당 1만원~10만원 대의 수업 형태로 임장 크루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업체에 문의해보니 임장 크루는 많게는 7~8명, 적게는 2~3명씩 교통·학군 등 아파트 주변 인프라와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 등을 둘러보는 식으로 꾸려져 있었다.
부동산 카페 회원 수 2만 명가량을 보유한 한 업체는 “강사 한 명이 소규모를 이끌고 직접 집에 들어가보기도 한다”며 “지역 현장으로 동행한 강사가 임장 후 총평하는 방식으로 마무리한다”고 설명했다. 임장 스터디 오픈 대화방 운영자도 “관심사별로 2명씩 조를 짜서 매물 임장을 간 뒤 강사가 피드백을 주는 수업이 가장 인기 많다”고 했다.
이들 임장 스터디 수강 후기엔 “임장에 큰 두려움과 선입견이 있었는데 강사와 여러 조원 도움 덕분에 두려움이 크게 사라졌다” “공인중개사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질문 요령, 임장 매너 등을 배울 수 있다”, “여의도 아파트 옥상에서 보는 한강뷰를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보여준 덕분에 여의도에 대해 진짜 많이 알게 됐다” 등의 호평이 대다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예전엔 동호회 모임처럼 취미 차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다녔다면, 최근엔 상업화돼 현장 실사가 부동산 재테크 교육 시장의 하나의 돈벌이 수단이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임장 크루는 매수 의사도 없으면서 단순 구경·공부 목적으로 실매물 집 안까지 들어가 보면서 중개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익명의 서울 강남권 공인중개사는 “예비 신혼부부라 해서 사람 사는 집을 정성껏 보여줬더니 전기·가스·수압 체크에 옵션인 에어컨도 켜보고 갔는데 임장 크루한테 당한 것 같다”며 “이런 사람들이 일주일에 1~2팀은 오니까 돈·시간 낭비에 업무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동구의 13년 차 공인중개사는 “집 살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들은 질문을 중구난방으로 던지는 등 어떻게든 티가 난다”며 “우리한텐 목숨이 걸린 생업인데 (임장 크루한텐) 집 쇼핑, 오락거리로 느껴져서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관련 민원이 빗발치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해 11월 임장 수업 운영 업체 11곳을 상대로 ‘임장 클래스를 위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방문 주의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 임장 크루 활동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집주인과 임대인·임차인 등도 애꿎은 피해를 보는 실정이다. 실매수자 이모씨는 “어머니 혼자 살 강동구 내 나홀로아파트를 보러 가고 싶어 공인중개사에 전화했는데 젊다는 이유로 임장 크루로 오해받았다”며 “계좌 잔액을 증명하라는 요구까지 받아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염창 쪽에 아파트를 보유한 실매도자는 “집 상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베란다에서 한강뷰만 한참 동안 찍더라”고 전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재테크가 유일한 신분상승의 기회로 찍힌 와중에 전세 사기 등 2030 세대의 불안감이 겹치면서 주도면밀하게 공부하듯이 접근하려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끄러워서 혼자서는 못 할 발품팔이를 과감한 집단행동으로 발현한 모습”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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