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부지법 폭력사태, 사실 나열식 보도…배경·의미 짚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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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58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가 지난 23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회의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수사 상황과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제주항공 참사 관련 기사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다. 위원들은 “중앙일보가 여론의 중심을 잡으면서 차별화된 보도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도 아쉬운 대목에 대한 고언을 내놨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윤 대통령 탄핵심판 상황과 관련해 좋은 시도를 한 기사가 많았다. 6일자 5면에 실린 ‘내란죄 제외’ 팩트체크 기사는 단순 전달에 그치지 않고, 여러 측면을 나눠 잘 분석해줬다. 21일자 6면에 통계 전문가인 유경준 전 의원 인터뷰로 부정선거 이슈를 면밀히 짚은 것도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다만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후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깊이 있게 다룬 보도가 적은 점은 아쉽다. 한국 헌정사에 기록될만한 충격적인 사건인데, 일어난 사실을 나열하는 기사가 주를 이뤘다. 사태 배경과 의미 등을 깊게 분석하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본다. 일반 시민이 탄핵 정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각 분야 전문가 의견은 어떤지 등을 다룬 보도도 추가로 이뤄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87, 길을 묻다’ 등은 좋은 시리즈 기사다. 단 이젠 탄핵·개헌·대선 등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큰 질문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앙일보가 사회 전체의 숙의를 이끄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계엄·탄핵 정국에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그런 기사들이 여럿 있었다. 23일자 6면의 ‘부정선거’ 팩트체크 기사, 20일자 6면의 ‘가짜뉴스’ 팩트체크 기사는 상세하고 깔끔하게 팩트를 잘 전달했다고 본다. 이런 노력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트럼프 어게인’ 기획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앞서 짚어볼 문제들을 여러 분야에서 잘 접근했다. 다만 15일자 8면의 ‘리틀 스트롱맨’ 기사에서 모디 인도 총리를 리틀 스트롱맨으로 분류한 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2월 30일자 8면 ‘재난 컨트롤타워 대행·대행’ 기사 제목은 여권 관계자 발언에서 따왔는데, 인용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14일자 8면 ‘여야 지지율차, 계엄 전보다 줄었다’ 기사의 부제도 여권 관계자 등의 이야기를 썼지만, 따옴표를 붙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편향성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1·2·3일자에 연이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 배경을 상세히 보도한 건 꽉 막힌 정국 상황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6일자 10면에 나간 ‘지방공항 경영난’ 기사는 제주항공 참사 이후로 불거진 지방공항 이슈를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지방공항 신설과 예산 투입 실태를 추가로 취재해 기사화하길 기대한다.
의정갈등과 관련해선 9일자 1·8면에 나간 40개 의대 학장 인터뷰 기사가 좋았다. 후속 보도들도 ‘의대 정원 원점 검토’ 등 달라지는 흐름을 잘 다뤘고,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향성도 뚜렷했다. 다만 정부 입장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를 분석하는 건 부족했다고 본다. 10일자 8면 김택우 의협 회장 인터뷰는 ‘대화하자’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부제를 ‘강경파’라고 단 게 의문이 들었다.
17일자 경제 3면 ‘차이나 공습 3라운드’ 기사는 고품질 중국산 제품 확산이란 흐름을 잘 보여줬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가격 인상 문제도 함께 짚어줄 필요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한 건 아쉽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제주항공 참사 보도 관련해선 자극적인 이미지 사용이 아쉬웠다. 재난보도 준칙에선 사고 발생 시 선정성을 주의하자는 점이 명시돼있다. 하지만 12월 30일자 지면 등엔 비행기 충돌 상황과 화염에 휩싸인 사진 등이 활용됐다.
17일자 2면의 김건희 여사 근황 기사는 김 여사를 직접 본 게 아니라, 내용 대부분이 관계자 전언으로 이뤄져 있다. 신빙성 측면에서 이런 보도는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미국 LA 산불은 지면에 자세히 보도됐지만, 근본 원인을 짚어주는 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기후변화 등 산불 위험성을 심층 분석하고,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 상황은 어떤지도 점검하는 기사가 나왔으면 한다.
21일자 경제 1면의 ‘남성 전업주부 23만 명’ 기사에 나온 ‘전업주부’라는 용어는 노동 측면에서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가사전담 등 중립적인 용어를 개발해서 언론이 쓰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중앙일보가 선도적인 팩트체크 기사로 부정선거 논란을 짚어준 게 좋았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걸 꾸준히 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서부지법 사태를 보면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없어진 거 같다. 관련 기사에 디테일한 팩트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7일자 18면 ‘사회복무요원 근태관리 강화’ 보도에선 기사와 제목이 서로 맞지 않는 점이 아쉽다. 제목은 ‘송민호’라고 명시했는데, 기사에선 사회복무요원으로 태만 논란이 불거진 연예인이란 구체적 설명이 없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주항공 참사 기사에선 다소 단정적인 제목이 아쉬웠다. 7일자 14면 ‘경찰 “제주항공 참사는 인재”’ 기사에선 경찰 입장이 확인된 게 아니고, 제주항공 대표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는 건데 몰아붙인 측면이 있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매년 1월엔 미국 CES 행사가 크게 있는데, 올해 중앙일보의 CES 기사는 지난해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한국 대기업 중심의 기사 배치를 넘어 엔비디아 등 외국 기업도 충실히 다뤘다고 생각한다. 올해 CES의 화두인 로봇·AI(인공지능)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등도 잘 짚어줬다고 본다.
2일자 14면 ‘중국 태양광 장성’ 기사는 중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잘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태양광 패널에 쌓이는 모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서쪽 사막에서 생산한 전력을 주요 도시로 어떻게 보내는지 등을 추가로 짚어주는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 3일자 14면 ‘머리뼈 안 크는 희귀병 지완이’ 기사는 국내 바이오 데이터 구축 필요성을 보여주고, 기부금이 제대로 활용되는 사례도 알려줘서 좋은 기사였다.
7일자 경제 1면 ‘2030 취준생 인식 변화’ 기사에선 용어 선택이 아쉽다. 2030 세대가 블루칼라를 선호한다고 했지만, 블루칼라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숙련직 선호에 가깝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단순히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나누기보단 계속 바뀌는 직업에 맞춰 그 경계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지난해 12월부터 중앙일보 지면을 보면 (달러당)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인지를 두고 전문가 견해가 강하게 충돌하는 양상이다. 환율 예측을 둔 상반된 견해가 날짜만 바뀌어 왔다 갔다 하면서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게 아쉽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전문가를 하나의 지면에 모아 치열하게 논쟁토록 하고, 독자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또한 경제와 관련해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추경’이다. 국민이 날로 어려워지는 중에 여·야가 한가롭게 갑론을박하는 상황을 두고 언론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앞으로 중앙일보가 경기 대응, 추경 여부와 관련해 정책 맥락을 적극적으로 짚어주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홍지혜 마이아트컴퍼니 대표=제주항공 참사 관련 중앙일보가 신속하게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구조·수습 과정도 상세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참사를 보는 전문가 시각이 제각각인데, 다양한 전문가와 인터뷰하고 이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도 적절했다고 본다.
3일자 16면 ‘해방 직후 105일의 기록 찾았다’ 기사에선 역사학자 김성칠의 해방일기를 다뤘다. 당시 사회상을 증언하는 사료로 중대한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본다. 이 내용이 중앙일보 홈페이지로 매주 공개되는 점도 주목된다. 역사적 사료의 대중화와 보급이란 측면에서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8일자 12면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 기사에선 임시공휴일의 실질적 효과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인 내수 경기 활성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보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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