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장항준 부부 점지한 '삼신할배'…70억 들여 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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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는 새벽마다 텐트 대기 줄로 북새통인 한의원이 있다. 전국에서 온 사람들의 ‘노숙런’을 위해 인근에 텐트 장비를 빌려주는 업체까지 생겼다. 경주에서 5대째 운영 중인 대추밭백한의원 앞 풍경이다. 난임치료 전문 한의원으로 ‘경주 삼신할배’라고 불린다. 장항준 영화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 등 유명 인사들이 이곳 약을 먹고 임신했다는 입소문에 더 유명해졌다.
대추밭백한의원의 대들보 없는 한옥
최근 대추밭백한의원이 50여년 만에 병원을 새로 짓고 경주 시내에서 외곽 사정동으로 이전했다. 약 4976㎡ 규모의 부지에 새로 지은 집은 세 동짜리 한옥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한옥이 아니다. 구조가 모두 다른데, 전통 목구조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세 채 모두 한옥의 주요 부재인 대들보가 없다. ‘치유의 집’이라는 컨셉트로 진료실ㆍ미술관ㆍ복합문화공간을 쓸 예정이다.
이 실험적인 한옥을 짓기 위해 투자한 시간만 10년. 땅값 제외한 공사비로만 70억원을 썼다. 최근 만난 5대 원장인 백진호(53) 원장은 “이런 집을 짓고 있다 하니 사람들이 서울 강남 아파트 사고 나머지 돈으로 경주 시내에 작은 빌딩을 사서 병원으로 쓰면 되는데 돈 안 되는 일을 한다고 타박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의원을 5대째 하면서 많이 받은 만큼 좋은 건축물을 지어서 경주의 품격도 올리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사명감으로 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추밭백한의원은 1890년께 경주시 건천읍 조전(棗田)리, 대추밭 동네 약방으로 출발했다. 당시 백 원장의 고조부가 자손이 생기지 않자 스스로 처방한 약을 먹고 임신에 성공해 입소문이 나면서 ‘대추밭 백약방’은 난임 치료의 명소가 됐다. 이후 1970년쯤 경주 시내 황오동에 한의원 건물을 지어 진료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에는 건물을 증축하려다 일이 커졌다. 공사를 위해 문화재 발굴조사를 했는데 황오동 터에서 신라ㆍ고려ㆍ조선시대 문화재 1800점이 쏟아지면서다. 그에 더해 경주시가 한의원 부지 일부가 포함된 도로 증축 공사를 추진하면서 결국 한의원을 이전하기로 했다.
이전 부지로 매입한 사정동 땅은 경주시 외곽에 있다. 하지만 고분이 사방에 있는 경주답게 이 땅도 인근에 문화재가 있는 역사문화보존지구여서 한옥만 지을 수 있었다. 백 원장은 “사실 어렸을 때 한옥에 살았던 터라 비싸고 불편하면서 유지관리가 어려운 한옥이 싫었다”며 “어차피 한옥을 지어야 한다면 다른 한옥, 진일보한 한옥을 지어보자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만난 건축가가 김재경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다. 김 교수는 경북 상주에 자작나무 합판 목구조로 지은 ‘세 그루 집’으로 2019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전통 목구조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새 한의원을 한옥을 재해석한, 오늘날의 목조건축으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디자인 연구부터 시작해 2016년부터 설계만 7년가량 했다. 김 교수는 “전통 건축의 공간 체계와 구조, 입면 비례 등을 재해석하고 경주의 건축과 자연유산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통 한옥은 지붕이 무거운 가분수 건축물이다. 기와와 기와를 고정하는 진흙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대들보나 기둥 같은 나무 부재가 두꺼워지고 많이 필요하다. 한옥 건축비가 비싼 이유다. 부잣집일수록 대들보 크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대추밭백한의원은 진흙을 쓰지 않는 건식공법으로 지붕을 만들어 무게를 줄였다. 진료실로 쓰는 한옥은 대들보 대신 강철 케이블로 구조를 보강해 전통 한옥보다 30~40%가량 목재를 덜 썼다. 미술관 한옥은 오스트리아산 집성목을 가공해 거대한 아치 기둥을 만들었다. 덕분에 한옥인데 고딕 성당 내부 같은 느낌이 난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쓰는 한옥이 그 중 백미다. 한옥 공포(栱包·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구조를 재해석한 화려한 나무 결구가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 교수는 “전통한옥은 늘 목수들의 경험에만 의존해 짓다 보니 새로운 한옥 구조를 검토하는데 가장 애먹었다”고 말했다.
한의원 뒷 마당에는 옹기 수백개가 있다. 백 원장은 아파트 시대를 맞아 더는 쓸모가 없어진 옹기를 수집한다. 십년을 모았더니 종갓집이 망하면 한의원으로 연락이 온다. 옹기 운반비로만 수백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백 원장이 꼽는 대추밭백한의원의 인기비결도 간명했다. “5대째 진료하면서 쌓인 데이터와 거짓말하지 않고 쓰는 질 좋은 한약재”란다. 백 원장은 “아름다움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무모하지만 용감하게 끝까지 갔더니 이런 집을 지었다”며 “치유의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감 받고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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