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내수 살리자는 지역화폐, 41%가 학원비로 썼다…김해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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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가 연간 20조원 넘게 발행하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상당수가 학원비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을 돕고, 지역 경기를 살리자는 지역화폐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2024년 경남 김해시의 지역화폐 사용처 상위 5곳 중 4곳이 학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많이 쓴 곳은 일반 교습학원(138억원)으로 지난해 총 사용액(726억원)의 19%에 해당한다. 외국어학원 및 기타 교습학원(69억원), 스포츠 교육기관(47억원) 등을 포함하면 학원에서만 전체의 41%가 쓰였다. 학원비에 이어 ‘식당’ 183억원(25.1%), ‘식자재 등 음식 관련 소비’ 76억원(10.5%), ‘스포츠시설 등 서비스업’ 63억원(8.6%), ‘내구재 소비’ 60억원(8.3%) 순이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상품권을 발행했지만 정작 음식점 같은 골목상권보다는 학원비 납부용으로 더 많이 쓰인 셈이다. 김해는 인구 평균 연령이 43.4세로 전국 평균(45.3세)보다 젊고, 합계출산율도 지자체 중에서 높은 편이다.
김해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9월까지 발행된 서울사랑상품권 중 19.6%(7285억원)가 입시학원 등 사교육비로 쓰였다. 같은 기간 식당 등 음식업점에서 사용된 금액(7047억 원·18.9%)보다 많다.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 업체에서 사용된 금액은 전체 결제액의 29%(지난해 1~6월 기준)에 그쳤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가장 큰 경기도 역시 2023년 결제액의 23%인 9686억원이 학원비였다.
지역화폐는 통상 할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100만원어치 상품권을 90만원에 사는 식이다. 그 차액만큼 지자체나 국가가 예산으로 메운다. ‘국민 세금으로 사교육비를 지원하는 꼴’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추가 소비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학원비는 상품권이 없어도 어차피 쓸 돈이라 사실상 소비를 대체하는 효과뿐이라는 설명이다. 김해 시민 남유호 씨는 “아이들 학원비를 결제하면 일종의 ‘캐시백’이니 부모들이야 좋겠지만, 식당이나 시장에서 더 많이 쓰여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정보시스템학회에서 2023년 9월 발행한 ‘지역화폐 정책 변화가 소비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 따르면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 역시 학원이나 병원 등 고액 사용처에 집중된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업종별로 캐시백(혜택) 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등의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역화폐는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1곳이 발행하고 있다. 발행액도 매년 증가 추세로 2023년 20조9000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지역에서 널리 쓰인다는 것 자체가 효용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일부 사용처가 부적절하더라도 지역 경제에 어느 정도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증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대략 시행 10년 차에 접어들지만 지역화폐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따진 연구는 거의 없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효과가 있다, 없다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실제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디에서 더 효과를 내는지 점검하는 게 먼저”라며 “애초에 지자체가 제각각 할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정부가 외식·숙박·관광 등 분야별로 소비쿠폰을 발행하는 게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근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된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지역화폐에 대한 국비 지원을 ‘재량’에서 ‘의무’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최근 5년 동안 지역화폐 사업에 투입된 국가 예산은 총 3조3784억원이다. 민주당 안대로 된다면 재정 수요가 수배 이상 증가할 거로 추산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모든 지자체가 발행하면 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발행 비용, 보조금 지급 등 부작용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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