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LG 월드 프리미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파트너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인공지능(AI) 인프라 건설에 5000억 달러(약 718조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이 핵심 프로세서 시장은 이미 장악했지만, 전력기기·에너지저장장치(ESS)·냉각 시스템 등 틈새시장을 노리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최근 발표한 ‘미국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따른 유망 품목 및 진출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2023년 55GW(기가와트)에서 2030년 171GW로 3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수요 중 절반 이상(51%)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미국 내 전체 전력의 8%를 데이터센터로 소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AI 인프라 건설에 대폭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오픈AI와 오라클, 소프트뱅크그룹 등 3사가 ‘스타게이트’란 합작사를 설립해 미국 각지에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코트라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삽과 곡괭이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19세기 중반 골드러시 당시 금을 캐서 성공한 사람은 소수이고, 삽과 곡괭이를 팔아 성공한 사람이 다수였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다. AI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은 데이터 처리 기능을 하는 서버와 이를 뒷받침하는 설비로 구분되는데, 한국 기업들은 센터 구축에 필요한 설비 분야를 공략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 전경. 사진 HD현대일렉트릭

대표적인 것은 변압기다. 전력망에서 받은 고전압을 낮은 전압으로 변환해 데이터센터 내 서버에 적합한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2050년까지 미 변압기 공급이 2021년 대비 최대 260% 증가할 전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와 울산 변압기 공장 증설을 위해 올해 약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고압 송전선도 유망 분야로 꼽힌다. 미국은 2029년까지 약 16만㎞ 규모의 송전선을 개선하기로 하는 등 노후 전력망 교체와 신규 전력망 구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LS전선은 1조원을 투자해 버지니아주에 미국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미국에서 7200억원 규모의 송전망 관련 사업을 수주해 북미 진출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ESS 시장 역시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실적 부진을 겪는 배터리 업체들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ESS 공략에 사활을 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테라젠, 엑셀시오 에너지 캐피탈 등 미국 에너지 업체들과 ESS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데이터센터 내 발열을 잡을 수 있는 냉각 솔루션 또한 한국 기업들이 공략할 수 있는 분야다. LG전자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초대형 냉방기 ‘칠러’ 수주계약을 논의 중이다. LG전자는 올해 조직개편을 통해 칠러를 담당하는 냉난방공조(HVAC)를 별도 본부로 격상시켜 사업을 키우고 있다.

최세영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연구원은 “성공적인 미 시장 진출을 위해 고도화된 기술력은 물론이고 현지화 전략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현지 법인 설립 등을 통해 고객 수요와 문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