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그림 같은 사진 속에 담긴 새로운 옛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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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특정 장면이나 사물을 포착한 결과물을 사진이라 하죠. 흔히 사진은 촬영자가 본 광경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 여기기 쉬워요. 사진 속 구도와 빛의 방향이나 양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사진 속 사물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긴 어렵죠. 반면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그림은 약간 다릅니다. 실제로 있었던 특별한 사건이나 사실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하여 그린 기록화도 있지만, 사물의 사실적 재현이 아닌 순수한 점·선·면·색채에 의한 표현을 목표로 한 추상화도 있죠.
그래서 사진과 그림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통념에 반하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슬로바키아 공화국(이하 슬로바키아) 출신의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예요. 사진과 그림의 경계에 있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가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김지우 학생기자와 장아원 학생모델이 전시장을 찾아 김도현 큐레이터를 만났죠.
지우 학생기자가 "전시 제목이 '어제의 미래'인 이유"를 궁금해했는데요.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모국인 슬로바키아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게 좋아요. 중부 유럽에 있는 내륙국인 슬로바키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의 지배에서 벗어나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를 구성했으며, 1948년부터 1989년까지는 공산정권이 지배했어요. 1993년 체코와의 분리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슬로바키아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나긴 했지만, 공산정권이 지배하던 시절은 여전히 슬로바키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죠.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슬로바키아의 작은 마을인 슬렙차니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회화에 관심이 많아 줄곧 예술가를 꿈꿨지만 대학에서는 고고학을 전공했어요. 대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여동생으로부터 DSLR 카메라를 선물을 받은 뒤 새로운 예술 세계에 눈을 떴고, 사진이야말로 자신이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예술임을 깨닫고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죠.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모든 곳에서 영감을 찾지만, 특히 과거 유년 시절의 건축물과 공산주의 시절의 체코슬로바키아가 그의 미적 감각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이런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관람객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를 표현한 것 같은 인상을 받죠. 전시 제목이 '어제의 미래'인 이유예요."
이번 전시는 노스탤지어(Nostalgia), 퓨트로 레트로(Futro Retro), 커플(Couple), 더 스위밍 풀(The Swimming Pool), 로스트 인 더 밸리(Lost in the valley) 등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어요. 다섯 개의 섹션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사진작가로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죠.
먼저 공산주의 시절의 소품을 차용해 당대 상황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노스탤지어 섹션부터 살펴볼까요. 김 큐레이터가 "노스탤지어란 향수, 과거에 대한 동경,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을 뜻해요. 이 섹션의 사진 속 인물들은 1980년대 이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입고 있어요. 실제 당시 의상보다는 좀 더 현대적인 디자인이며, 옷의 색깔도 원색적이고 강렬하죠. 옛것을 활용했지만 옛것으로 보이지 않아요"라고 설명하며 '닥터' 시리즈와 '정육점' 시리즈를 가리켰어요.
'정육점' 시리즈 속 한 인물은 잘게 자른 고기와 함께 서 있었어요. 일반적으로 정육점 하면 떠올리는 큰 부위로 도축된 고깃덩어리와는 다른 모습이죠. "이 사진은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모습을 묘사한 거예요. 사실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1988년에 태어났기에 공산주의 시절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닙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와 본인이 옛날 사진을 보면서 상상한 기억을 자신의 경험처럼 구성한 것이죠."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인 채로 경직된 자세로 서거나 앉아있었어요. 이러한 표정과 경직된 자세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요소예요. "인물들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연출은 이를 통해 보이는 감정의 빈 공간을 관람객이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즉, 옛 기억을 감정과 함께 떠올리기보다는 장면만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과거의 시대에 과감한 색, 절제된 구도, 감정이 없는 인물의 표정을 더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표현 방식은 두 번째 섹션 '퓨트로 레트로'와 세 번째 섹션 '커플'에서도 이어집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어린이들의 복장을 재해석한 '사비나'의 채도 높은 붉은색, 여러 명의 사람이 계단에서 일자로 누워있는 '완전한 평면이 있는가'의 치밀하게 계산된 경직된 구도를 보면 한눈에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이란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죠.
2010년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한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2016년 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s 수상을 시작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에 선정되는 등 6년 만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사진작가가 됐는데요. 네 번째 섹션 '더 스위밍풀'은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죠.
김 큐레이터가 "'더 스위밍풀' 시리즈는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4년 동안 1930년대 슬로바키아에 지어진 13개의 수영장을 찾아 제작한 작품들이에요. 처음 이 시리즈를 촬영한 장소는 그가 태어난 도시인 즐라테모라브체에 있는 수영장입니다. 아름다운 채광과 직선적 라인의 대형 수영장을 빨강·파랑·노랑 등 원색을 과감하게 활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죠"라고 설명하며 작품 '노랑'을 가리켰어요. 노란색 수영복을 입은 여성이 수면에 얼굴을 반만 드러낸 장면이었는데요. 잔잔한 수면과 수영장 타일이 모두 직선으로 구성돼 있었죠. 과감한 색 활용과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다웠어요.
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던 아원 학생모델이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사진인데 그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네요"라고 말했죠.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에는 후작업이 많이 들어가요. 앞서 언급한 계산된 구도 연출이나 채도 조절뿐만 아니라, 사진 속 인물을 복제해서 배치하는 등 인위적 연출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회화에 가까운 사진으로 보이죠.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사진을 회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닌, 옛것이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요소에 연출을 가미해 새로운 것, 즉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기록물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예요."
소중 학생기자단의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관람은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프로젝트 '로스트 인 더 밸리' 감상으로 끝났어요. 미국에서 촬영했음에도 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시대 전통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등작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이는 1960년대 후반 소련이 개혁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 군사 침공을 주도한 이후, 많은 체코슬로바키아 시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을 암시하죠. '퓨트로 레트로' 시리즈, '더 스위밍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빨강·파랑 등 원색을 강렬하게 활용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술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어요. 새로운 예술 흐름을 주도한 이들은 언제나 과거의 통념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죠.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마리아 스바르보바처럼 말이에요.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예술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까요.
동행취재=김지우(서울 대치초 5)학생기자·장아원(경기도 위례푸른초 6) 학생모델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9길 26(견지동 85-24), 그라운드서울
관람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마감 오후 6시), 월요일 휴무
관람료: 청소년 1만5000원, 성인 2만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그라운드서울에 들어서자마자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어요. 설명을 읽으며 처음부터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여러 가지 작품 중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작품은 바로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더 스위밍풀' 시리즈였어요. 이 작품들은 대칭도 잘 맞고, 직선도 잘 사용해 정말 구도적으로 계산을 많이 했을 것 같았어요. 전시장 한 공간에는 수영장 모형도 크게 만들어 놓았죠. 거기에 수영장의 물을 표현하기 위해 조명도 틀고, 자세히 들어 보면 물방울 소리도 잔잔하게 났답니다. 수영장 사진 외에도 병원이나 연애에 대한 사진들도 있었는데 모든 사진이 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사진작가에 관심 있는 소중 독자 여러분은 한 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김지우(서울 대치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에서는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전시를 살펴봤어요. 전에 부모님과 갔던 전시회였었는데 또 가게 돼서 신기했죠. 예전에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번 취재를 계기로 관심이 생겼어요. 또한 전에 자세히 보지 못했던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도 알게 되었어요. 전에 봤던 사진들의 경우 김도현 큐레이터님의 설명을 들으며 보니 새로웠고,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알고 나니 또 작품이 달라 보였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시리즈는 '더 스위밍풀'이에요. 아무래도 가장 유명하고 마리아 스바르보바 특유의 몽환적이고 어딘가 무섭기도 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른 시리즈도 보고 싶네요.
장아원(경기도 위례푸른초 6)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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