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칠갑한 채 쇠파이프 들었다…"역시 하정우" 말나온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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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47)가 날 것의 '수컷' 연기로 돌아왔다.
영화 '브로큰'(5일 개봉)에서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질주한다. 복수를 위해 내달리며 걸리적거리는 모든 대상을 제압하는 그의 서늘한 눈빛은 '황해'(2010), '추격자'(2008) 등 강렬했던 그의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만에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로 돌아와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이며 스크린을 장악해간다.
하정우가 연기한 주인공 민태는 출소 후 노동 일을 하며 살아가는 전직 조폭이다.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에서 일하며 아내 문영(유다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마약을 하는 동생 석태(박종환)는 그에게 유일한 피붙이이자,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다. 어느 날 그가 끔찍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민태는 동생의 죽음의 실마리를 쥐고 사라진 문영의 행방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동생의 죽음을 예고한 듯한 소설을 쓴 호령(김남길)과 엮이지만, 민태는 오로지 복수만 생각하며 복잡한 상황을 거침없이 뚫고 나간다. 신예 감독들과의 궁합이 좋은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상업영화에 첫 데뷔한 김진황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달 말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데, 길거리에서 독학으로 영화를 배운 사람처럼 야생성이 느껴졌다. 시나리오 또한 그랬다"고 말했다.
민태는 하정우가 최근 몇 년 간 했던 캐릭터들과는 다른 결의 인물이다. 피칠갑한 채 쇠파이프를 들고 횟집에서 걸어 나오는 첫 장면부터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에너지기 느껴진다.
하정우는 민태 캐릭터에 대해 "부글부글 끓고 분노하는 용암 같은 에너지를 가진 거친 인물"이라고 말했다. 푸석한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 추레한 복장 등 하정우는 외양부터 철저히 민태에 녹아들었다.
"코로나19 격리가 끝나가던 2022년 1월 말 촬영을 시작했는데, 몸무게가 90kg에 육박했어요. 관리를 끊은 자연인 그 자체였죠. 최근 작품들이 기능적으로 세팅된 캐릭터였는데, 이번 영화에선 꾸미지 않고 느끼는 대로 연기했습니다. 현장에서 움직여보며 콘티를 수정해간 '황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죠."
'선택과 집중'을 위해 중요 인물인 호령의 분량이 뭉텅 잘려나간 건 영화의 허점으로 느껴진다. 개차반 같은 동생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민태의 복수에 관객이 얼마나 공감할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삭막하고 비정한 하드보일드 감성과 액션은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민태의 무자비한 쇠파이프 액션은 영화의 강렬한 인장으로 남을 듯 하다. '황해'에서 면가(김윤석)의 뼈다귀 액션 신을 연상케 한다.
'ㄱ'자로 꺾인 쇠파이프는 예전에 파이프를 자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 감독이 떠올린 액션 도구다. 민태가 휘두르는 쇠파이프는 생생하면서도 처절한 타격감을 객석에 전달한다.
평소 백팩에 쇠파이프를 넣고 다니던 민태는 동생의 장례식이 끝난 뒤 벌이는 혈투 때는 종이백에서 쇠파이프를 꺼내든다. 하정우가 김 감독에게 제안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부둣가 혈투 신에서 민태는 빳빳하게 굳은 냉동 생선을 들고 싸우는데, 이 또한 촬영 현장에서 떠올린 즉흥 아이디어였다.
"강릉 부둣가에서 리허설 하는데 냉동 생선이 냉동고에 보관돼 있었어요. 그걸 무기로 쓰자는 아이디어에 다들 반색했죠. 지느러미가 날카로워 위험했지만, 연습을 많이 한 뒤 찍었습니다. 쓰레기 더미를 그대로 이용한 골목길 액션 신 등 감독이 현장 분위기와 소품을 고스란히 담으려 애썼죠."
'하정우는 역시 누아르다' '초심으로 돌아갔다' 등의 반응에 대해선 "이런 캐릭터가 오랜만일 뿐, 초심은 늘 갖고 간다"며 "많은 분들이 이런 작품을 기다렸고, 좋아하신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SNS에서도 멋지게 꾸민 게시물보다는 싹이 난 감자, 후줄근한 얼굴의 일상 등 이상한 사진의 반응이 훨씬 좋다"며 웃었다.
'1947 보스톤'·'비공식 작전'(2023), '하이재킹'(2024) 등 최근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다. 이에 대한 고민이 깊은 듯 했다.
"'쌍천만'이 아닌 '쌍백만' 배우라는 말도 듣고, 부진의 시기를 거치며 느낀 게 많죠. 영화는 후회 없이 만들었고 그 때는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개봉하면 그게 관객에 온전히 전달됐나, 시기가 적절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조만간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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