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 현수막에 20년 軍생활 접었다…7남매 아빠가 만든 섬마을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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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에 경사가 생겼다. 강원도에 살던 고태진(42)씨와 자녀 3명이 전입 신고를 마치고 섬마을 주민이 됐다. 고태진씨 아내와 자녀 4명은 이미 지난해 12월 말 원산도로 전입, 가족 9명이 모두 한 지붕 아래로 모였다.
고씨 가족이 원산도에 정착한 사연은 이렇다. 현역 군인(부사관)으로 강원도 한 부대에서 복무하던 고씨는 지난해 여름 보령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군인휴양소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왔다. 휴가 기간 원산도를 지나던 그는 우연히 도로변에 붙어 있던 현수막을 봤다. 광명초등학교로 입학하거나 전학하면 장학금 3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광명초등학교를 비롯해 원의중학교(폐교) 등 원산도 소재 4개 초·중학교 졸업생이 연합해서 구성한 통합총동문회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장학금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초등학교를 지키자는 취지였다. 지난해는 3000여 만원과 입학축하금을 지원해 신입생과 전학생을 각각 2명 유치했다.
20년 군(軍) 생활 정리…보령에서 인생 2막
고씨는 통합총동문회 신세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전입 절차를 논의했다. 오는 3월 20여년간 군 생활을 정리할 예정인 고씨는 원산도에서 가족과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원산도는 2019년 12월 원산안면대교 개통 전까지 보령에서 가장 큰 섬이었다. 2년 뒤인 2021년 12월 보령해저터널이 개통하면서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면서 주민들은 지역 발전과 인구 증가를 기대했다. 하지만 원산도 인구는 2021년 1113명에서 지난해 말 1017명으로 96명이 줄었다, 해저터널 개통으로 보령 도심과 가까워지는 바람에 진학 문제 등을 이유로 젊은 층이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자 원산도의 유일한 학교인 광명초등학교 역시 폐교 위기에 놓였다. 섬 주민과 보령시 노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상황에서 전교생 17명 가운데 5명이 졸업하면서 전교생이 다시 12명으로 감소했다. 관련 기준(충남교육청)에 따르면 2년간 신입생이 없거나 교직원 수가 학생 수보다 많으면 분교로 조정된다.
자녀 3명 광명초 입·전학…분교 위기 벗어나
폐교 위기에 직면했던 광명초등학교는 고태진씨 가족이 원산도로 이사를 오면서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했다. 고씨의 자녀는 모두 7명으로 큰 아이는 18살, 막내가 두살이다. 이 가운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섯 째와 2학년과 4학년이 되는 다섯째, 넷째가 동시에 광명초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전교생이 12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셋째는 원산도에 중학교가 없어 보령 시내로 통학하게 된다.
신세철 회장과 주민은 고씨가 임시로 머물 집을 구해준 뒤 보령시의 지원 사업(폐가 와 헌 집 리모델링)을 통해 새집에서 살 수 있도록 안내했다. 고씨 가족은 이르면 4월쯤 새집으로 이사한다. 통합총동문회는 고씨 가족에게 이사 지원금 300만원과 전·입학생 축하금 1200만원 등 1500만원을 전달했다.
통합총동문회, 이사 지원금·전입학 축하금 전달
고씨는 “원산도에서 아직까지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원산도 주민의 배려에 뭐든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세철 통합총동문회장은 “어려운 결심을 해준 고태진씨와 가족이 원산도에서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민 모두가 도울 것”이라며 “광명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37년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령시는 시의회와 협의, 다자녀 가족 지원 조례 등을 추가로 제정하는 등 전입자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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