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70세 빌 게이츠 회고록 "디지털 사회 낙관했던 나, 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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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미래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1970년대 개인컴퓨터(PC) 혁명을 이끈 선구안은 그를 세계 자산 순위 12위 자리(포브스 기준)에 올려놓았다. 곧 70세가 되는 현재도 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고정돼 있다. 그가 세운 게이츠재단은 인공지능(AI)에서부터 에너지, 질병, 최근에는 우주 분야까지, 인류의 내일을 찾는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 『소스 코드: 나의 시작』(열린책들)의 출간을 앞두고 지난달 7일 진행된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게이츠는 누구보다도 과거지향적이었다. 집필을 위해 최근 어린 시절 친구, 선생님, 동료들을 집중적으로 만난 영향일 수도 있다. 그는 과거를 돌아봤던 과정이 “생각보다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미국판 출판사인 펭귄북스가 미국 외 언론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인터뷰에는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중앙데일리가 참여했다.
미국보다 하루 뒤인 5일 한국에서도 출간되는 이 책은 3부작으로 예정된 게이츠 회고록 시리즈의 첫 권이다. 어린 시절과 하버드대학교 자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 그리고 초기 경영 과정에서 공동창업자 폴 앨런과 겪은 갈등, 절친 켄트의 죽음 등 25세까지 여정을 기록했다.
인터뷰 내내 게이츠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실제로 회고록은 70년대 미국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그가 시애틀의 부유한 동네에서 자라 사립학교와 하버드를 거치는 미국 주류 사회의 성공 서사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안에 통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이츠는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어린 시절 겪었던 문제에 대해 털어놓는다. 최대한 솔직한 회고록을 쓰고 싶었다는 그는 인터뷰 중 요즘 태어났으면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일론 머스크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면서 “AI의 역할과 위험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소개했다. 본인도 지분이 막대한 디지털 혁신이 만든 사회 변화에 대해선, “소셜미디어(SNS)가 나오기까지는 긍정적이었는데, 내가 순진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답했다. 다음은 게이츠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회고록 집필 과정은 어땠나.
- 일반적으로 새로운 혁신에 집중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회고록 작업은 꽤 흥미로웠다. 특히, 부모님과 알고 지냈던 분들, 레이크사이드 사립학교와 하버드 시절의 친구들, MS 초기 팀원들 등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들의 영향이 내 삶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책 작업은 나에게 매우 개인적인 프로젝트였고,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했다.
- 초등학교와 중학생 시절, 어머니에 반항했던 이야기도 나온다.
- 가족 중 문제아는 나였고,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었다. 어머니는 굉장히 규칙적인 분이셨지만, 나는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따르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셨고 결국 상담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어머니와 싸우는 것은 일종의 시간 낭비인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이제 돌아가셨지만 지금까지도 나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운 좋게도 좋은 부모님을 만났고 나를 잘 이끌어주었다.
- 요즘 태어났으면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병명을 언급한 이유가 궁금하다.
- 내 성향과 능력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학창 시절, 다른 학생들이 리포트 10장을 쓸 때 나는 200장을 써서 내고, 폴 앨런을 만나기 전까지 나만큼 공상과학(SF)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또래와 사회적 교류는 더디게 익혀 나갔다.
어른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다소 혼란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어떤 해에 한 선생님은 내게 유급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선생님은 오히려 한 학년 건너뛰라고 권했다. 요즘은 이런 비슷한 아이들을 위한 약이나 치료법이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조금 특별한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내 이야기가 희망이 됐으면 한다.
- MS 공동 창업자 폴 앨런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민감한 주제일 것 같은데.(※2018년 세상을 떠난 앨런은 생전 자서전 등에서 게이츠를 돈 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고 비난했다.)
- 앨런과의 관계는 굉장히 특별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소 순진한 면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나처럼 회사 일에만 미치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사이 일이 잘 풀리던 시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이 회고록을 솔직하게 쓰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과정과 갈등을 다 포함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MS만의 일이 아니라, 창업자들이 대부분 한 번은 겪는 과정이지 않을까.
- 또 다른 친구 켄트 에반스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 폴 앨런, 릭 와이랜드, 켄트 에반스에 나까지 4명은 모두 친구였지만, 켄트와는 매일 전화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켄트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지닌 아이였다. 중학생 때 내게 포춘을 읽게 했고 우리가 미래에 대사가 될지, 장군이 될지, 최고경영자가 될 것인지 토론을 이끌었다. 나는 당시 ‘우리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해야 하나’ 의아했다.
25세 때 맞은 그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켄트는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 책의 에필로그에 어린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점이 그런가.
-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내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주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와 카드 게임을 하면서 이기는 방법을 분석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법을 익히며, 이를 더 작고 빠르게 만들 수 있을 지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깊이 생각한다면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난 학생이라 생각한다.
- AI 시대가 왔다. 무한대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긍정적으로 보는가.
- 1970년대에 디지털 시대를 꿈꾸며 이를 활용해 문서를 작성하고, 정보를 찾고, 더 나은 방식으로 인간이 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터넷이 개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필요한 힘을 부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루머들조차 인터넷에 퍼지는 것을 보며, 부정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기술의 발전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제 AI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만큼 빠르게 오지는 않았고 아직 정교함의 문제도 남아 있지만, 앞으로 AI는 매우 경쟁력 있는 기술로 발전할 것이다. 요즘 AI 관련 기술의 가격이 급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기술의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며, 인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나는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예전처럼 이런 기술이 인간에게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테크리더들이 대통령 자문을 하고 신문사·방송국·소셜미디어까지 소유하고 있다. 억만장자들이 지나치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테크기업이 성공하면 사회에서 큰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막대한 개인적 부를 가져올 수 있다. 나는 항상 누진 과세 방식을 지지해왔다. (※게이츠는 누진소비세와 상속세에 찬성하고 부유세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세대 간 부의 편중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자선 활동을 장려하며 권력의 집중을 줄이는 것이 우선 시 돼야 한다고 믿는다.
나 역시 트럼프와 만난 적이 있다. 일론 머스크처럼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AI라는 변수가 민간 기업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전쟁 등에서 이 기술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술이 남용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아직은 테크리더들이 공무원으로 선출되는 것은 아니니, (정부에서의 역할은) 결국 지켜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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