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수 관리에 통역도…우리의 ‘키다리 언니’

본문

17386824340754.jpg

지도자와 일본어 통역을 오가며 맹활약 중인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 [사진 WKBL]

“일복이 터졌어요. 프로 생활 34년(선수 20년, 지도자 14년)을 통틀어 가장 바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웃음)

여자 프로농구(WKBL) 아산 우리은행 전주원(53) 코치 별명은 ‘쓰리잡러’다. 1인 3역을 한다는 뜻이다. 예년 같으면 훈련 지도와 선수단 관리면 됐다. 올해는 여기에 일본어 전담 통역이란 생소한 업무가 추가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8월 신설된 아시아 쿼터로 가드 스나가와 나츠키(29)와 미야사카 모모나(31) 등 일본 선수를 영입했다. 한국 생활이 처음인 두 선수가 코트 안팎에서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일본통’ 전 코치가 투입됐다. “코치가 통역하면 일본 선수들이 팀에 녹아드는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위성우 감독이 추천했다. 전 코치는 “일본어를 배운 적은 없다. 다만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선수 시절 전지훈련, 원정경기, 재활치료 등으로 일본을 자주 방문했다. 일본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단어도 조금씩 외우고, 말하기 듣기 실력도 키웠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일본인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됐다”고 수준급 일본어 실력의 비결을 공개했다.

17386824342619.jpg

경기 중 작전을 지시하는 전 코치. [사진 WKBL]

전 코치의 주 역할은 위 감독과 함께 훈련 및 경기를 이끄는 것이다. 한국 여자 농구 레전드인 그의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선수들은 성장세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경기 중엔 순간의 흐름을 읽어내고 전술을 조언한다. 코트 밖에선 위 감독이 챙기지 못하는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맏언니 역할까지 수행한다. 나츠키와 모모나 합류 뒤로 전 코치 일상은 확 달라졌다. 훈련 땐 국내 선수들에게 설명한 전술을 일어로 반복한다. 훈련 뒤에는 일본 선수들의 은행 업무나 부상 치료 등 일정마다 빠짐없이 동행한다. 경기 도중 작전 타임 땐 감독 지시를 통역한다. 경기가 끝나고 일본 선수가 수훈 선수로 뽑히면 기자회견에 동석해 통역한다.

1738682434437.jpg

나츠키(왼쪽)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맏언니’의 면모도 보였다. [사진 WKBL]

전 코치는 “지금은 내가 통역하는 걸 다 알지만, 시즌 초만 해도 중계방송을 본 일부 팬이 ‘작전 타임에 왜 코치가 감독보다 말이 많냐’고 지적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저 감독님 지시를 잘 전달하려는 마음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오해할 수 있겠더라”라며 웃었다. 이어 “실수로 한국 선수한텐 일본어로, 일본 선수한텐 한국말로 지시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털어놨다.

17386824346208.jpg

모모나(왼쪽)의 통역으로 인터뷰에 나선 전 코치. [사진 WKBL]

노력과 수고는 성적으로 돌아왔다. 박혜진(BNK), 박지현(마요르카), 최이샘, 나윤정(이상 KB) 등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의 지난 시즌 우승 멤버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김단비만 남았다. 나츠키와 모모나도 사실 일본리그에선 식스맨(후보) 급이다. 우리은행은 가드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문가들이 뽑은 우승 후보에서도 빠졌다. 반전이 일어났다. 일본 선수들이 예상 밖 활약을 펼쳤다. 시즌 중반까지 2~3위였던 우리은행(18승 7패)은 5경기를 남긴 4일 현재 BNK(17승 8패)를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나츠키는 스틸 4위(평균 1.6개), 어시스트 7위(3.2개)에, 모모나는 굿수비 17위(0.2개)에 이름을 올렸다.

전 코치는 “나츠키와 모모나가 화려한 경력의 다른 팀 일본 선수들보다 빨리 적응했다. 특히 기록에선 안 보이는 상대 압박과 활동량이 뛰어나다. 덕분에 김단비도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나츠키는 “우리를 직접 지도하는 코치님 통역은 전문통역사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알아듣기 쉽다. 감독님 지시를 수행하는 데 다른 팀 선수보다 유리하다”고 자랑했다. 또 “한국은 일본보다 훈련량이 많고 고된 편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게 일본의 선수 문화인데, (전) 코치님이 그걸 알고 진짜 힘들 때 배려해준다. 코트 안팎에서 친언니처럼 꼼꼼하게 챙겨줘 실력도 늘고 빨리 적응했다”고 고마워했다.

팬 사이에선 “우리은행이 우승하면 최우수선수상은 전주원 코치”라는 말도 나온다. 전 코치는 “노력해준 선수들이 기특하다. 팀이 우승할 수 있다면 N잡러가 되는 건 두렵지 않다”며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1,70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