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놀라운 '전환'위복…유튜브도 원래 데이팅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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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사 가르는 ‘피벗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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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생물과도 같다. 거시경제 변수는 분초마다 바뀌고, 소비자 수요도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한다. 그때 그때 자세를 바꿔 잡을 줄 아는 기업만이 내일도 영업할 수 있다. 하물며 패기 하나 쥐고 막 태어난 스타트업이라면? 순간 순간의 선택이 당장의 생사를 가르게 마련. 빠르고 정확한 피벗(pivot·사업 방향 전환)이 중요한 이유다. 투자 시장의 먹구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요즘 같은 시절엔 그런 역량이 더 요구된다. 한 스타트업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린 피벗 결정은 몸소 터득한 온갖 교훈의 결정체다. 중앙일보가 15곳 이상 국내 스타트업을 만나 피벗 스토리를 모았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다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 그게 바로 스타트업의 피벗이다. 대외 환경이 불확실성으로 넘실대는 요즘엔 특히 많은 스타트업이 피벗을 고민하고 있다. 피벗이란 용어부터가 생소하다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켜서 앱 목록을 살펴보자. 누구나 아는 글로벌 빅테크 서비스 중 피벗을 경험하지 않은 서비스가 거의 없을 정도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유튜브의 시작은 2005년 영상 기반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 ‘튠인 훅업(Tune in hook up)’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의 동영상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포착하자, 한 달만에 기존 서비스를 접고 유튜브라는 이름의 새 플랫폼을 열었다.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도 2010년 초 사용자가 특정 장소에서 체크인 뒤 사진을 공유하면 포인트를 주는 위치 기반 소셜 앱 ‘버븐’으로 시작했다. 사용자들이 유독 사진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 착안해 모든 기능을 버리고 ‘사진 공유’에만 집중한 게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미국 앱 IMVU의 공동창업자 에릭 리스는 2012년 발간한 책 『린 스타트업』에서 ‘피벗은 제품, 사업모델, 성장엔진에 대해 근본적인 새 가설을 테스트하려고 디자인된 특별한 변화’라고 정의했다. ‘피벗은 성장하는 사업에서 영구적이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강조했다. 피벗의 종류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사업 전략 자체를 바꾸는 ‘전략 전환’, 타깃 소비자군 수요에 맞춰 서비스 성격을 바꾸는 ‘고객 맞춤’, 특정 제품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더 넒은 제품군을 만들어내는 ‘줌인·줌아웃’ 등이다. 종류는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바로 프로덕트 마켓 핏(PMF), 시장의 요구와 기대에 맞춰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바꾸는 것이다.
위기에서 만든 반전
중앙일보가 만난 피벗 유경험 국내 스타트업 40%(15곳 중 6곳)는 ‘전략 전환’을 통해 생존했다. 국내 1위 라이브 커머스 솔루션 ‘소스’를 운영하는 모비두가 대표적이다. 당초 사람 귀엔 안 들리는 ‘비가청 음파 전송’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모비두는 이 기술로 모바일 쿠폰, 결제 솔루션 등 사업을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윤희 모비두 대표는 “이대론 죽겠다 싶어 직원 워크숍을 열어 신사업 아이템 발표회를 가졌는데 그 때 1위를 한 게 라이브 커머스였다”며 “그 즉시 특허 기술 대신 새 아이템에 ‘올인’하기로 했고, 전 직원이 밤샘 작업에 뛰어들어 두어 달 만에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6곳)는 ‘고객 맞춤’ 사례였다. 2017년 라이다(LiDAR) 센서 기반 ‘인지(perception)’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로 출발한 서울로보틱스가 그런 경우다.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자율주행 시장 성장이 더뎌 사업 기회를 찾지 못했다. 독일 딩골핑 공장에 자율주행 차량 출고 시스템 ‘레벨5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달라는 BMW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피벗의 단초가 됐다. 지금은 이 솔루션을 핵심 제품 삼아 코스닥 상장을 노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줌인·줌아웃’에 해당하는 사례는 20%(3곳)였다. 2015년 7월 판교 직장인 대상 중고거래 앱 ‘판교장터’로 출발했다가,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지나 지역 내 모임, 구인구직, 부동산·중고차 거래, 숏폼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한 당근이 ‘줌아웃’ 사례다. 반면 2018년 장애인 및 비장애인 채용 플랫폼 ‘브이스토리’ 앱으로 사업 첫발을 뗐다가, 직업을 구하려는 장애인과 장애인 고용 부담금이 부담인 기업들로 타깃을 좁힌 브이드림은 ‘줌인’ 사례다.
스타트업의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피벗이 필요한 건 바로 그런 때다. 투자 전문가, 변호사 등이 의기투합해 비상장 주식 투자 플랫폼을 만들며 시작한 엔젤리그도 그랬다. 2021년 금융위원회 규제 샌드박스로 선정되며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2년 후 기간 만료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전문성을 살려 주주명부 관리 서비스 ‘캡박스’를 내놨으나 시장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제서야 ‘다 필요없고 뭘 만들어야 팔릴까’부터 고민하게 됐고, 온라인 셀러들을 위한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그러다 온라인 판매 등 부업을 하는 이들이 ‘동영상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한번 더 피벗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동영상 생성 AI 플랫폼 패스트컷 AI다. 오현석 엔젤리그 대표는 “일감 없이 근 2년을 버텨보니 이제 ‘살아남으려면 못할 게 없다’ 싶어졌다”고 말했다.
피벗은 스타트업 불수의근
피벗을 해야 할 순간이 오더라도 창업자가 이를 최종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 아이템을 두고 고객·투자자·임직원 등 이해관계자에게 빈틈 없는 확신을 심어줘야 하고, 반대로 본인 스스로 문제가 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기부정’의 시간을 이겨내야 해서다. 피벗을 결정해도 첩첩산중이다. 새 사업방향에 맞춰 인력을 다시 세팅하려면 기존 직원을 억지로 떠나보내야만 하고, 이 역시 고통이다. 무엇보다 당장 들어오는 한두 푼의 매출 탓에 ‘될 것 같은’ 새 사업을 앞에 두고 기존 사업을 놓지 못하는 ‘매몰비용의 함정’을 이겨내야 한다. 최혁준 화이트큐브 대표는 “피벗은 비유하자면 자전거를 배울까 말까의 문제”라며 “배우는 과정에서 다칠 가능성은 있지만 한번 배우면 그냥 걸을 때보다 훨씬 빨라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과정임에도 피벗을 택하려면 대표, 직원, 고객, 투자자 중 누군가가 이끌어야 한다. 2015년 웹문서 주요 내용을 강조(하이라이팅)해주는 서비스로 시작했다가 2023년 2월 AI 검색 서비스로 피벗한 라이너의 경우 직원이 피벗을 이끌었다. 김진우 라이너 대표는 “허훈 테크 리드가 초기 단계부터 거대언어모델(LLM)이 정보 탐색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정기적으로 이를 꾸준히 설명해 조직 내 공감대를 형성해줬다”고 말했다.
영상 외국어 더빙 서비스 비브리지AI는 고객사에 밀착해 기회를 잡았다. 박정현 비브리지 대표는 “주력 서비스를 모두 접은 뒤 고객사였던 삼프로TV로 무작정 달려가 페인 포인트를 찾았다”며 “이런저런 서비스를 만들어주면서 테스트하던 중, 삼프로TV 쪽에서 ‘이건 얼마를 주면 앞으로 계속 해줄 수 있냐’고 먼저 물어봐준 아이템이 바로 더빙”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피벗이란 어떤 의미일까. 최완섭 채널코퍼레이션 CPO는 “불수의근(不隨意筋·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이라고 답했다. 생존을 위해 꿈틀대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홍주영 라포랩스 대표는 “안타를 치기 위한 한 번의 스윙”이라고 했다. 스윙을 빠르게, 많이 할수록 한 번이라도 안타를 칠 수 있다는 의미다. 최혁준 화이트큐브 대표는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달라지면 회사도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각양각색의 답이 나왔지만, 속뜻은 결국 ‘시장’과 ‘생존’으로 연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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