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빌어먹을 트럼프, 美 싸구려 와인 안먹어!" 캐나다가 화났다 [르포]
-
2회 연결
본문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이럴 순 없습니다. 이제 평생 미국 물건은 사지 않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초 통보했던 25%의 관세 부과 시점을 10시간 가량 앞둔 3일(현지시간) 오후.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토론토의 한 마트에서 만난 루시 제임스는 오렌지를 사려다 ‘미국 플로리다’라고 표기된 스티커를 보고는 “빌어먹을 트럼프”라는 욕설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노아 존스은 “미국산 싸구려 테이블 와인은 안 먹으면 그만”이라며 끼어들었다. 그는 “트럼프의 멍청한 결정으로 미국은 이제 가장 강력한 동맹국의 신뢰를 잃게 됐다”며 “두 나라 모두 타격을 입겠지만, 분명한 건 캐나다와 캐나다인들은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캐나다의 반발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캐나다인들이 그동안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사실상 공동 운명체로 여겨왔다는 점에서 관세 부과에 대한 배신감이 강하게 표출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기자에게 ‘한국에서 왔냐’고 묻고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연설에서 캐나다가 미국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며 “트럼프에게는 동맹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고도 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에 대한 반감은 ‘캐나다 우선주의’를 자극하는 형태로도 나타났다. 관세 부과를 앞뒀던 이날 토론토 곳곳엔 캐나다 국기가 내걸렸고, 특히 자국 브랜드의 상점에는 일제히 “100% 캐나다산”이라는 홍보 문구가 세워졌다. 마트에선 미국 코카콜라와 펩시 등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캐나다 브랜드 탄산음료가 진열된 곳도 있었다.
캐나다 브랜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리암 톰슨은 기자에게 캐나다 국기 모양의 스티커를 건네며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는 말에 대해 모두가 한 마디로 ‘노탱큐’”라며 “이런 기류가 확대되면서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캐나다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났고,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의 일방적인 조치에 끌려가는 캐나다의 무능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관세 부과 시점을 30일 늦춘다는 결정이 나온 트뤼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전후로 확대됐다.
당초 관세 부과 시점이던 4일 0시부터 미국산 주류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던 온타리오주가 독점 운영하는 주류 매장 LCBO에선 철수 작업이 중단됐다. 이날 오전 멕시코가 사실상 ‘백기 투항’하며 30일간의 관세 유예가 결정된 이후다. 점원 알리스터 바탈라는 “오후 정상통화를 앞두고 작업 중단 지시가 내려왔다”며 “정부도 왔다갔다 하고 일부 시민들도 ‘미국산 불매’를 외치면서도 재고 부담 때문에 싸게 파는 미국 주류를 다량 구매하는 것을 보면서 뭐가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매장엔 미국산 주류 진열장 곳곳이 이미 비어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카트 가득 미국산 술을 쓸어담아 옮기고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던 엘리엇 리는 기자에게 “더 큰 문제는 경제적 구조”라고 했다. 그는 “외국 기업이 높은 세금을 물리는 캐나다에 공장을 지었던 이유가 캐나다와 미국의 무관세혜택 때문이었다”며 “트럼프는 관세 때문에 외국 공장이 떠나면 캐나다가 엄청난 실업난을 안게 돼 버티기 어렵다는 약점을 노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종속 구조 때문에 미국에서 유입되는 총기류에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펜타닐 유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펜타닐 차르’를 신설하고 조직범죄와 마약·자금세탁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과의 합동 타격부대를 출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관세 유예를 위해 캐나다가 중국산 펜타닐의 유통 경로임을 자인한 셈이다.
이미 공항 업무는 중국인을 집중 관리하는 형태로 전환된 정황도 확인됐다. 이날 토론토 국제공항 입국장 심사대 4곳 모두엔 중국계 세관원이 배치돼 있었고, 이들 창구 앞에는 중국인들만 긴 줄을 서서 심도 있는 입국 심사를 받았다. 반면 비(非)중국 외국인 상당수는 창구로 가지 않고 간단한 질문만을 거쳐 입국이 허가됐다. 세관 직원은 “정확한 배경과 시점은 모르겠지만, 트럼프 재집권 이후 중국인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워졌다”며 “중국계 직원이 집중된 트럼프의 요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준상 캐나다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본지에 “캐나다가 정치적으로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쉽게 흔들린 이유는 미국이 관세를 1년만 지속하더라도 사실상 붕괴될 수 있는 경제 종속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세 유예 결정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관세가 반복적으로 협상의 무기로 사용될 거란 점이 확인된 것”이라며 “이 때문에 캐나다에 이미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한국 기업들도 투자금을 날리고 미국으로 거점을 옮겨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댓글목록 0